[살며 사랑하며-박선이] 죽음 앞에서

입력 2012-06-20 18:23


지난 주일에는 1년 전 딸을 먼저 보낸 어머니께서 1주기를 맞아 우리 교회를 방문하셨다. 진작 인사를 했어야 했는데, 마음이 추슬러지지 않아 못 왔다며 인사말씀을 하시는데, 편안해 보였다. 죽음을 극복하셨음을 느낄 수 있었다.

치열하게 살다가 암에 걸려 일찍 떠나게 된 그녀를 보며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새삼 우리에게 생명권이 없음을 실감하며 생명의 주인이신 분께 겸손히 우리의 삶과 죽음을 맡겨야 함을 깊이 인정했다. 그리고 그 장례식장에 갔을 때 선교사인 오빠 부부의 모습에서 묘한 여운이 남는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다.

아침 일찍 소식을 듣고 달려갔는데, 두 분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맞아주는 것이었다. 침대 곁에서 찬송하고 기도하며 밤을 새웠다고 하는데, 피곤한 기색도 없이 좋은 일을 마친 사람들처럼 밝게 웃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아! 이들은 천국에 대한 확신이 가득 찬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모두 이런 모습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교회에서는 언젠가 많지 않은 시간 차이로 세 집이 상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두 집은 40대와 50대의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한 집은 대학에 갓 입학한 생때같은 아들을 오토바이 사고로 잃었다. 가족을 먼저 보낸 분들에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마음이 불편했다. 특히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은 너무 깊어 병원 신세를 지며 근근이 살아간다고 했다.

그러던 차에 나에게 마지막 주에 설교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우리 교회는 만인제사장주의를 따름으로 신학교에서 공부하신 분이 주 설교자로 말씀을 전하지만 평신도들도 마지막 주에는 말씀을 준비해 나누고 있다. 물론 사제주의를 배격하는 입장에서 ‘평신도’라는 말도 적절치는 않지만.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나는 이 문제를 성경적으로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죽음과 부활’을 주제로 잡고 성경을 찾아보며 공부했다. 이 주제에 집중하며 말씀을 찾아보는 동안 나는 ‘부활’이 기독교의 핵심 진리임을 더 깊이 확신하게 되었다. 바울이 목숨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으며 엄청난 선교활동을 한 것도 그가 스스로 표현한 것처럼 ‘예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주일, 아파서 못 오겠다던 아들 잃은 부부도, 남편 보낸 두 분도 참석했다. 열다섯 살부터 꼭 10년간 죽음의 문제를 풀지 못해 방황하다 문제를 해결하신 주님 만난 간증부터 시작해 예배 때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마지막 구절이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임을 상기하고, 우리는 나그네 인생길을 하루하루 살다가 언제든 부르실 때 떠나는 존재이며 부활의 소망이 최고의 복임을 강조하며 마쳤다. 위로하고 싶었던 분들이 미소 띤 얼굴로 손을 잡아주었다. 마음이 짠하면서도 기뻤다.

박선이 해와나무출판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