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부모’ 저자 3인이 말하는 ‘자식농사’… “부모 자존감 회복하고 아이에 존재감”

입력 2012-06-19 18:02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부제의 책이 최근 나왔다. 병상일지 같은 이 책의 제목은 ‘대한민국 부모’다. 이승욱의 공공상담소 이승욱 소장, 한 건강정신연구소 신희경 소장, 청소년 교육활동가 김은산씨. 세 사람을 지난 8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나 우리나라 학부모들과 자녀가 처한 현실을 알아보고, 이 땅에서 가장 아픈 이들의 회복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부모와 자녀 관계가 망가진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신희경=지인들이 책을 보고 나서 엄마를 ‘미친×’이라고 부르는 데 놀라더라.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정말 엄마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적개심, 적대감을 보인다. 엄마를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을 것 같다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다.

△김은산=아이들은 자신들에게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는 엄마를 밀쳐내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적개심을 키운다. 자기 자신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사춘기 때 엄마가 모든 것에 개입하니 더욱 힘들어한다. 또 말과 행동이 다른 부모를 위선적이라고 욕하고 분개한다.

△이승욱=아버지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버지는 정서적 유대를 맺고 싶지 않은 존재, 친하게 지내기에는 너무 ‘찌질한’ 존재로 생각한다.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데, 자식들이 부모 마음을 너무 몰라주는 것 아닌가?

△신=부모는 공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해야 하는 것으로 밀어붙인다. 성적과 공부 말고는 관심도 할말도 없는 부모에게 아이들은 절망하고 있다. 어떤 자발성도 허용되지 않는 삶을 살면서 아이들은 망가지고 있다.

△김=요즘 아이들이 즐겨 쓰는 단어가 ‘미친 존재감’ ‘잉여(剩餘)’ 등이다. 아이들은 존재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자신들의 존재감 없음에 실망하면서 스스로를 남아도는 존재로 여기고 있다.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만 인정하는 세계에서 아이들은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이=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여름방학이 되면 미국 아이비리그에 진출한 아이들의 상담이 급증한다. 공부만 했던 ‘똑똑이’들은 사람과 정서적 관계를 맺는 데는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다. 정서적 지진아라고나 할까.

-엄마들이 ‘공부하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 그러는 것 아닌가?

△김=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느라 부모들은 현재의 아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재미도 의미도 없는 공부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이들에겐 고통일 뿐이다. 부모가 원하는 공부를 ‘해드리기’ 위해 게임을 하고, 술도 마시는 등 일탈을 한다.

△신=대한민국 엄마들은 바로 아이의 성공으로 자신의 삶을 증명하려고 한다. 아이를 통하지 않고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 아이 성적이 떨어지거나 공부를 안 하려고 하면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광적인 집착으로 변한다.

△이=부모 자식 사이가 원수보다 더한 관계로 전락해도 자식을 대학에만 보내면 잘 될 것으로 믿고 대입 준비에 올인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은 ‘구명조끼’가 돼 주지 않는다. 대학졸업장이 결코 취업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럼 부모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

△신=공부만 하면 다 이해되고 용서되는, 지금 같은 양육방식으로는 아이들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없다. 아이들도 집안 청소, 요리 등을 함께 하면서 가족이란 공동체에 기여하고 돕게 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 나가 타인과 더불어 살 수 있 된다.

△이=언제부턴가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나처럼 살지 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1970∼80년대는 물론 2000년대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요즘 교육의 핵심 키워드로 통하는 아이의 자존감도 결국 부모 자신의 자존감에서 비롯된다. 부모가 먼저 자존감을 회복해야 한다. 먼저 자신에게 당당해져라. 부모처럼 살지 말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말자.

△김=아이와 같은 수준에서 싸우고, 아이에게 자신도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짓 삶을 강요하는 부모가 대부분이다. 부모가 먼저 자기 삶을 책임질 줄 아는 어른이 돼야 한다. 자식에게 기대지 말고,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게 투사하지 말고 독립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의 싹수를 발견할 때까지 기다려주자.

△신=요즘 부모들은 부모 노릇을 잘 하기 위해 감정코칭, 아이메시지 대화법, 자기주도학습, 자존감 향상 등을 배운다. 하지만 아이 미래는 매뉴얼이나 부모교육프로그램으로 얻을 수 없다.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개인의 자각도 필요하지만 이를 지원해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 정상화에 사회와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말인가?

△이=아이들은 자신들과 부모와의 관계를 어긋나게 한 것은 미친 교육열이라고 본다. 사실 아닌가. 상위 1%를 위한 과열경쟁에서 나머지 99%가 낙오자가 되고 있다. 그 상위 1%마저 다양한 삶과 개별적 가치를 가꿀 기회를 상실한 채 살고 있다. 이 불행한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한다. 자기 아이를 위해 쏟는 힘을 조직화한다면 가능하다.

△김=지금 부모와 아이들은 잘못된 제도에 순응해서 살아남으려 하지만, 결국 지쳐서 미쳐가거나 죽어가고 있다. 교육 본래의 의미를 복원해야 한다.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내적 덕목과 배려, 사회적 윤리를 가르쳐야 한다. 공교육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