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정치인의 결단

입력 2012-06-19 18:36

일본 집권당인 민주당이 포퓰리즘 공약을 하나둘 철회하고 있다. 2009년 소비세를 올리지 않고 무상복지를 시행하겠다는 것을 포함해 온갖 공약을 내걸었지만 급증하는 국가부채와 재원고갈의 벽에 막혀 백기를 든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고속도로 무료화 공약을 폐기한 데 이어 중학생 이하 어린이에게 월 2만6000엔을 주기로 한 아동수당도 대폭 줄였다. 재원이 부족하자 절반만 지급하다가 소득에 따라 지급 대상과 금액을 줄인 것이다.

민주당의 공약 철회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민주당과 야당인 자민·공명당이 최근 소비세를 5%에서 단계적으로 10%로 올리기로 합의했다. 일본 정가에서 금기시된 소비세 인상을 단행키로 한 것이다. 민주당은 연금 납부와 관계없이 은퇴자들에게 월 최저 7만엔을 주는 최저연금제도 포기했다. 당초 소비세 인상과 함께 최저연금제를 처리할 방침이었다.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00%를 넘었고, 경기침체는 장기화하고 있으며, 성장동력마저 약해진 일본이 뒷감당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선심성 공약으로 유권자를 유혹해 권력을 잡은 민주당이 반(反) 포퓰리즘 정책으로 선회한 것은 일본 장래를 위해 크게 다행스런 일이다.

잘못된 공약임을 뒤늦게 깨닫고 과감하게 유턴한 일본 정치인들의 모습이 신선하기까지 하다. 민주당이 무상 복지를 힘으로 밀어붙였다면 국가채무가 급증해 유럽 재정위기의 진원지인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의 전철을 밟았으리라.

한때 잘나갔던 스페인은 지방정부들이 무상 의료·교육을 무분별하게 도입했고, 수요가 없는 공항 건설을 비롯해 선심성 사업에 돈을 퍼부었다가 국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국채 금리가 지난 3월 초 5%였지만 18일에는 10년물 국채 금리가 7.13%까지 치솟았다. 국채 금리가 7%를 넘어서면 구제금융행 문턱까지 갔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스페인에서는 궤도를 수정한 정치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일류인 기업체와 이류인 행정부는 그런대로 괜찮지만 삼류인 정치인들이 문제다. 득표에만 눈이 멀어 무상 복지공약을 쏟아내는 정치꾼들을 보면 나라 장래가 걱정스럽다. 지난 4·11 총선 때 여야가 발표한 복지공약을 시행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들어가는 비용만 853조원으로 추산된다. 18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천문학적 돈이 들어갈 공약이 난무할 공산이 크다. 국가 미래를 책임질 큰 정치인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