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종로 (13) 술은 되는데 담배가?… 헌금기도 끝에 금연 성공

입력 2012-06-19 17:48


“목사님, 저는 아직 신앙이 덜 여물었고, 더구나 장로가 무언지조차도 잘 모릅니다. 여러모로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좀 더 기다리겠습니다.”

“그냥 내 뜻에 따르세요. 아무 말 하지 말고 지금 날 따라오세요.”

1988년 가을이었던 것 같다. 장홍수 목사님이 찾기에 갔더니 장로 피택을 받으라고 하셨다. 집사 임명을 받을 때처럼 당황스럽지는 않았지만 나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목사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렸더니 목사님께서는 어딘가로 가자고 하셨다.

목사님을 따라 간 곳은 영등포의 한 피아노 가게였다. 목사님은 이것저것 피아노를 살피시더니 피아노 한 대를 한참 쳐다보셨다. 눈치 빠른 가게 주인은 잽싸게 700만원짜린데 650만원까지 깎아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교회에 피아노가 한 대 필요한 것 같았다. 나는 그 피아노를 사서 교회에 헌납했다.

그리고 며칠 후 장로 피택 선거가 있었다. 나는 탈락선에서 겨우 1표를 더 얻어 턱걸이로 통과했다. 쑥스러우면서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왜 목사님이 굳이 나에게 피아노를 헌납토록 했는지 이해됐다. 목사님은 간접적으로 나의 득표 활동을 도와주신 것이었다. ‘서 집사를 장로로 만들면 앞으로 제대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교회에 알린 것이다. 거기다 당시 교회를 성심성의껏 섬기던 아내 전은경 집사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는 득표요인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다음해 7월 2일 교회 창립주일에 장로 장립을 받았다. 나로선 장로가 됐다는 사실에 대한 의미가 남달랐다. 무엇보다 송구스러우면서도 과분한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술 마시고 도박하고 온갖 추악한 짓에 정신 팔렸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교회 장로가 됐으니 말이다.

그리고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 크게 다가왔다. 아내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식들에게 참으로 부끄럽고 미안했다. 아비는 온갖 나쁜 짓을 다하면서도 두 아이에게는 학원 한 번 다닐 수 없게 한 게 죄스러웠다. 다행히 두 아이는 자신들의 노력으로 좋은 대학을 나와 훌륭한 사회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엔 아내의 처절한 기도와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이 있었다는 걸 잘 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참으로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이다. 교회를 다니기 전에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담배 하나만 해도 그랬다. 교회를 본격적으로 나가면서 술은 충분히 절제할 수 있었지만 골수염 통증을 견디기 위해 한꺼번에 두 대, 세 대씩 연거푸 피워야 했던 담배는 아무리 결심을 해도 끊을 수 없었다. 기도를 해도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고, 주위에 금연한다고 선언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런 중 언뜻 머릿속으로 미리 금연 감사부터 하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직은 못 끊었지만 끊었다 가정하고 감사헌금부터 하기로 했다. 속으로 최후의 수단이라는 생각으로 400만원을 정성껏 봉투에 담아 ‘아버지, 담배 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는 헌금함에 담았다. 그리고는 금연에 성공했다.

그랬다.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빠져나오기가 그토록 쉽지 않았다. 죄의 족쇄, 파멸의 족쇄로부터 풀려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다. 그때부터 나는 성경 한 구절을 가슴에 담고 수시로 입으로 표현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나는 내 삶의 변화 그리고 내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기적들을 보면서 말씀의 진실과 능력을 수없이 확인하면서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기도하게 된다. “아, 하나님 아버지, 저도 이제 이렇게 새 것이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 한 분만이 유일무이로 거룩하시고 전지전능하십니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