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환의 삶과 신앙] 영혼의 날개
입력 2012-06-18 18:20
5000㎞를 날아 대륙을 횡단하는 나비가 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멕시코 미초아칸 주까지 날아가는 ‘제왕나비’(Danaus Plexippus)라는 나비다. 멕시코 미초아칸 주에서는 이 나비가 날아오는 시기에 축제를 연단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나비가 엄청난 거리를 여행하며 찾아오기 때문에 미초아칸 주의 사람들은 이 나비를 ‘사자의 혼’이라 칭하며 아주 반갑게 맞아준다. 이 나비 앞에 소원을 빌면 이 나비의 날갯짓이 하늘 높이 날며 신에게 그 소원을 전달해 준다고 믿기 때문에 결혼식에서 하객들이 이 나비를 잡아 소원을 빌며 방생하는 풍습이 있다 한다. 그런데 올해 찾아온 나비는 작년에 찾아온 나비의 4대손이라 한다. 멕시코 해안에서 캐나다 중부까지 장장 5000여㎞를 대를 물려가며 왕복으로 여행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한 세대의 여정이 아니라 4대에 걸쳐 대를 이어 가며 삶의 목적지를 찾아 떠나는 제왕나비의 군락이동은 참으로 신비한 생명의 비밀이며 그 모습이 장엄하기까지 하다.
그리스 사람들은 ‘나비’(Psyche)를 인간의 영혼과 동일하게 부른다. 나비의 탄생 과정이 영혼의 탄생 과정과 흡사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애벌레로 땅이나 나뭇잎 위를 기어 다니다 번데기가 되어 고치를 틀고 몇 개월간의 어두운 밤을 지나서 마침내 날개를 단 화려한 자유의 몸으로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나비의 변환 과정이 마치 인간 혼의 탄생과 같아서 지어진 이름이리라.
우리가 자유로운 혼이 되어 자신만의 영혼의 날개를 가지고 삶의 목적지를 향해 살아가려면 꼭 거쳐야만 하는 단계가 있다. 고치 속 번데기가 되어 자신의 삶의 변환을 꾀하는 침묵과 고립의 과정이다. 이 과정은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심한 고립감과 고통을 가져다주는 과정이며 때론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과의 분리를 요청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혼에 자유로운 날개를 가지고 싶으면서도 그 날개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이 고립과 고통의 과정을 생략하려 하기 때문이다. 고치 속에서 보내야만 하는 영혼의 깊고 어두운 밤이 두렵기 때문이다. 고치 속에 웅크리는 번데기의 기간이 생략된 나비는 존재할 수 없듯이 영혼의 어두운 밤을 생략하고 고통 없이 찾아오는 영혼의 날개, 자유혼의 탄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고통 없는 자유, 번데기 시절이 없는 화려한 비상만을 꿈꾸기 때문에 우리들의 삶은 언제나 애벌레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영혼의 자유로움만을 동경하며 살아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 6명당 한 명은 우울증이나 기타 정신질환에 노출되어 살아간다는 통계가 있다. 내년부터는 전 국민이 신체검사 과정에 반드시 우울증 검사도 같이 받아야 하는 법이 시행된다는 입법예고까지 나와 있는 상황이다. 교역량 세계 7위, GDP 대비 경제순위 세계 11위를 자랑하며 한반도 전쟁의 상처를 60년 만에 떨궈내고 불사조처럼 일어나 한강의 기적을 일군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우울한 공화국이 되고 말았을까.
우울증은 영혼이 앓는 병이다. 영혼이 날개를 잃고 방황할 때, 자신이 날아가야만 할 삶의 목적지를 잃고 애벌레로 이 땅을 기어야만 한다고 느낄 때, 그 절망한 영혼이 앓는 병이 바로 우울증이다. 따라서 우울증의 치료도 역시 영혼에 날개를 달아주는 방법이 가장 확실한 치유법이라 믿는다. 우리 민족은 혼의 자유를 숭배하고 혼의 창의적인 날갯짓을 삶의 가장 고귀한 중심 가치로 여기며 살아왔던 혼의 국가다. 그 혼들이 지금 병들어 날개를 접고 있다. 그 혼에 불을 놓아 날개를 다시 펼칠 길은 없을까? “언제쯤 당신 앞에 꽃으로 피겠습니까/ 불고 싶은 대로 부시는 노을빛 바람이여/ 봉오리로 맺혀 있던 갑갑한 이 아픔이/ 소리 없이 터지도록 그 타는 눈길과 숨결을 주십시오… 고요히 내 혼에 불을 놓아 꽃으로 피워내는 뜨거운 바람이여”(이해인, 내 혼에 불을 놓아). 시인의 바람처럼 우리 혼에 불을 놓아 저 거룩한 날개로 거듭나는 뜨거운 바람, 성령의 바람을 체험하는 이 여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