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종로 (12) ‘벽돌 값’ 헌금 결정에 옛사람 가고 주님 선물이
입력 2012-06-18 18:06
후련했다. 편안했다. 기뻤다. 마치 오랫동안 갇혀 있던 감옥에서 해방된 기분인가 하면, 해묵은 빚을 다 갚고 홀가분해진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고 놀라워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직도 옛사람의 흔적이 덕지덕지 남아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셨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의심을 하면 할수록 분명 그와 비슷한 음성 같은 것이 계속 들려왔고 그 음성은 내 의식을 완벽하게 거머잡았다. 그리고 또 하나 분명한 증거가 있었다. 내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차고 올라오는 희열에 대해서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어려웠다. 극심한 재정난으로 공장을 돌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이전처럼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막연하지만 어떻게 해결될 거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 건 아내였다. 사실 아내는 내가 벽돌 값을 받으러 교회에 가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그런 아내였기에 내가 벽돌 값을 헌금했다는 데 대해 목사님 못지않게 반가워했다.
“당신 잘했어. 참 잘했어. 당장 고생하는 거 조금만 참아. 당신 아버지가 다 해결해주실 거야. 당신 아버지가 전지전능하신 분이란 거 알지?”
역시 아내의 말이 맞았다. 아니, 아내의 믿음에 능력이 있었다. 재정난에 쩔쩔 매고 있는 중 평소 알고 지내던 건재상 사장에게서 뜻밖의 제안이 왔다. 자신이 시멘트와 자재를 공급할 테니 자기 회사에서 쓸 벽돌을 책임지고 생산해달라는 것이었다. 가격과 제반 조건도 만족스러웠다.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우리 생산시설에 비해 물량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그것도 해결됐다. 직원들이 새벽 4시부터 전깃불을 켜고 일을 시작해 밤늦게까지 해주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 이틀은 몰라도 직원들이 계속 그렇게 일을 한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저기서 주문이 들어왔다. 거짓말 같았다.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거기에다 좋은 일이 또 생겼다. 어떻게 하다가 주변 철거민들의 입주권 수속절차를 대신 해주게 됐는데, 쏠쏠한 수입을 올렸다.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 치기였다. 한 번은 또 이런 일이 있었다.
주일 저녁 예배를 드리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부동산중개인이 와서 2600만원을 줄 테니 우리 집을 팔라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집을 팔려고 내놓았는데 기대 이상의 호조건이었다. 당장 계약을 하자고 하기에 그러자고 했다.
그러자 아내가 제동을 걸었다. 예배가 더 중요한데 어떻게 예배를 빼먹고 집 매매계약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예배 끝나고 보자고 하고선 아내에게 끌려가다시피 해서 교회에 갔다. 예배를 드리는 내내 계약 생각뿐이었다. 예배를 마치자마자 부리나케 부동산중개소로 달려갔지만 중개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내에게 원망을 쏟아냈지만 아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이번엔 다른 부동산중개인이 찾아왔다. 그도 우리 집을 사고 싶다면서 2900만원을 제시하고 당장 계약을 하자고 했다. 하룻밤 사이에 300만원을 더 받게 된 것이다. 아내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봐요. 예배 잘 드리니 하나님이 예쁘게 봐주셔서 이렇게 복을 주시잖아요.”
사업이 불 일 듯했다. 1억5000만원짜리 단독주택을 구입하고, 부동산으로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주위에선 운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말대로 아버지께서 복을 내려주시는 거라고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속에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경외감이 솔솔 솟아났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