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 옛날엔 못 먹어서 요즘은 안 먹어서 걸린다
입력 2012-06-18 17:39
결핵 환자는 결핵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내성 방지는 물론 완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반면 약 먹기를 소홀히 할 경우 완치는커녕 내성균(슈퍼결핵) 확산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7일 적절한 치료와 복약을 거부하는 결핵 환자의 경우 제재 조치를 가할 수 있다는 내용의 결핵관리사업 강화대책을 마련키로 한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대한결핵협회와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슈퍼결핵 환자 수는 6월 현재 2472명으로 추산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치다. 정부 주도 퇴치운동으로 1970년대까지 환자 수가 급감하던 일반 결핵환자도 2000년 이후 더 이상 줄지 않고 되레 증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못 먹고 못 살던 시대의 전유물로 여겼던 결핵. 역사 속의 ‘폐병’이 다시 고개를 들고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결핵의 실체에 대해 재조명해 본다.
◇스트레스와 다이어트로 인한 영양부족이 원인=과거의 결핵은 가난으로 인한 영양결핍이 원인이었다면 지금은 스트레스, 과로 등에 따른 면역력 저하와 다이어트로 인한 영양부족이 주 원인으로 지적된다. 말하자면 옛날엔 못 먹어서, 오늘날엔 안 먹어서 결핵에 걸리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잦은 스트레스와 함께 늘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생활하는 직장인과 학생들이 위험계층이다. 실내공기 오염, 불규칙한 식사, 운동부족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지기 쉬운 까닭이다. 학생들의 경우 영유아기에 접종한 결핵 백신인 비시지(BCG)의 효력이 10대 후반부터 떨어지는 시기인데다 교실에서 장시간 생활하며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생활습관, 무리한 다이어트 등으로 결핵 감염 위험이 높아질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결핵은 우리 몸 전체에 나타나는 병=결핵이라고 하면 폐결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결핵은 사실 폐 외에도 흉막, 임파선, 뇌, 척추, 관절, 신장, 간, 대장, 복막, 생식기 등 다양한 부위에 생기는 전신 질환이다.
또한 결핵은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전혀 이상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결핵 초기 증세가 기침과 가래, 피로감, 신경과민, 미열 등으로 건강한 사람도 감기에 걸리면 흔히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듯 결핵 환자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객혈의 경우도 실제론 그렇게 심하지 않다.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권오정 교수는 “객혈은 결핵보다 오히려 기관지염, 기관지확장증 등과 같은 기관지질환에서 더 흔한 것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결핵은 폐결핵 환자가 기침을 할 때 결핵균이 섞인 채 튀어나온 가래 분말이 공기 중에 떠돌다가 다른 사람의 폐로 침투하면서 전파된다. 그러나 결핵균이 침입했다고 해서 누구나 결핵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물론 결핵 환자라고 모두 결핵균을 배출하는 것도 아니다.
권 교수는 “혹시 가래에 결핵균이 섞여 나오는 환자라도 결핵 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하면 대부분 한 달 이내에 전염력을 잃게 된다”며 “결핵 퇴치를 위해선 무엇보다 꾸준히 약을 먹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이한 대처가 더 큰 문제다=결핵은 약을 6개월 또는 그 이상 꾸준히 먹기만 하면 대부분 완치된다. 문제는 다량의 약제를 장기간 복용해야 한다는 점과 복용 시 소화장애, 복통 등의 부작용으로 인해 환자 본인이 임의로 복용을 중단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는 점.
결핵균은 끈질기기 때문에 이렇게 완치 전에 약 복용을 중단하거나 불규칙적으로 먹으면 내성이 생기게 된다. 결국 그 다음에는 효과가 적은데다 부작용이 생길 경우 더 강한 2차 약을 장기간 투약해야 하므로 완치 가능성이 점점 줄어든다.
중앙대병원 호흡기내과 박인원 교수는 “결핵은 충분한 기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결핵약을 복용하는지가 완치 여부를 판가름하는 열쇠”라며 “이 기간에는 반드시 금주, 금연하도록 하고 음식도 되도록 골고루 충분히 먹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