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연평해전 도발징후 묵살 경위 재조사하라
입력 2012-06-18 18:23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발발 직전 북한 함정이 만반의 공격 준비가 돼 있음을 상급부대에 보고한 전문이 공개됐다. 그동안 군에서 북한 도발 징후를 사전 감청했다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구체적 전문 내용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선제공격을 가했던 북한 경비정 684호가 교전 이틀 전에 상급부대인 8전대에 보고한 ‘SI(특수정보) 15자’는 “발포 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다”는 내용이었다고 월간조선 7월호가 보도했다. 대북 통신감청을 총괄하던 5679부대가 포착한 이 전문은 상부 명령만 내려지면 언제든지 도발을 실행에 옮기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어린아이라도 도발 징후를 짐작할 만한 교신기록을 우리 군 상부에서는 무시했다. 묵살 배경을 놓고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큰 논란이 됐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대응에 나선 우리 해군에 상부로부터 사격 중지 지시가 급히 내려온 점도 논란 대상이었다.
제2연평해전은 한·일 월드컵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북한 경비정의 기습으로 참수리 357정 정장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한 사건이다. 전문 내용 공개를 계기로 당시 군과 청와대의 정보보고 처리 과정과 북 도발 대응 경위를 재조사해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 당시 정부가 해전 발생 후에도 북한 도발을 우발적이라고 축소한 경위도 밝혀야 한다.
북한은 동포 국가이지만, 전쟁을 치렀고 지금도 총을 겨누고 있는 적이기도 하다. 공존을 모색하되 도발에는 한 치의 허점 없이 대비하고, 가차 없이 대응해야 한다. 이에 실패한 군은 설 자리가 없다. 신속하고 강한 응전력을 갖추지 못하면 평화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평화공세에 말려들어 어설프게 대응하면 내부 분란만 키우고, 북한에 잘못된 신호만 줄 뿐이라는 게 10년 전 제2연평해전이 남긴 준엄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