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벗을 그리며
입력 2012-06-18 18:27
사람들에게 벗이란 각별하다. 부모형제 외에 평생토록 자신의 삶에 가장 깊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벗의 존재란 그래서 더욱 귀하다. 그 때문인가. 공자는 ‘먼 곳에서 벗이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하였다.
공자는 벗과의 사귐을 유난히 중시해 이 영향이 제자들에게 전해졌다. 증자는 ‘군자는 학문으로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인을 돕는다’고 하였다. 증자의 재전(再傳) 제자인 맹자는 ‘나이가 많은 것을 배경으로 삼지 않고 벗하며, 귀하다는 것을 배경으로 삼지 않고 벗하며, 형제를 배경으로 삼지 않고 벗한다. 벗함은 덕(德)을 벗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세상엔 언제나 지음(知音)이 적은 법, 마음 통하는 벗을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나이가 비슷한 사람 가운데 벗할 이가 없으면, 망년교(忘年交)를 맺기도 한다. 그마저 없으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옛 사람을 벗한다. 그도 여의치 않다면 사물을 벗한다. 원결(元結)은 ‘고을에 군자가 없으면 구름과 산을 벗하고, 마을에 군자가 없으면 소나무와 잣나무를 벗하고, 자리에 군자가 없으면 거문고를 벗한다’ 하였다.
이런 전통이 18세기 조선에 와서 ‘벗은 제2의 나(第二我)’라고 한 마테오 리치의 ‘교유론’과 만나 꽃을 피웠다. 유난했던 연암 그룹의 우정도 그렇게 형성되었다. 자신을 알아주는 이 없는 세상에서 외로웠던 호걸 선비들이 만나 크게 통했던 것이다.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박제가는 이서구의 집에 묵으며 위의 시를 뽑았다.
그러나 벗이 어찌 항상 가까이 있을 수 있을까. 두보는 멀리 떨어진 벗을 그리워하며 ‘위수 북쪽엔 봄 하늘에 우뚝 선 나무, 강 동쪽엔 저문 날의 구름이여(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라고 노래했다. 미루나무 언덕에 올라 손나팔을 하고, 남쪽 하늘 끝 구름 아래 그 어디의 벗에게 편지를 띄운다. “잘 계십니까? 제 목소리 들리나요?”
이규필(성균관대 대동문화硏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