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황태순] 대권놀음에 도끼자루 썩는다

입력 2012-06-17 19:09


18대 대통령선거가 꼭 6개월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새누리당에서는 경선 룰 개정을 둘러싸고 박근혜 전 대표와 비박 주자들 간에 한 치 양보도 없는 치킨게임이 50일째 벌어지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당 체제를 정비하기 무섭게 잠룡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선출마 선언에 나섰고, 당 소속 의원들은 이 캠프 저 캠프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통합진보당은 아직도 끝없는 당권싸움으로 국민들을 지치게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4·11 총선이 끝나고 두 달을 훌쩍 넘긴 대한민국 정치권의 현 주소다.

더 이상 국민 우롱하지 말고

19대 국회의원의 임기는 이미 지난 5월 30일 시작됐다. 국회법에 따라서 6월 5일까지 의장단을 선출하고 8일까지는 상임위원장을 선출해 원 구성을 마쳐야 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여야 모두 원 구성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아니 좀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국정운영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여당조차 국회 원 구성을 가급적 미루려는 것 같다. 세간에는 새누리당이 박근혜 전 대표를 보호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고 있다는 그럴싸한 음모론까지 나돌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당초 정무위, 문방위, 국토해양위 중 한 곳의 위원장 배분을 협상조건으로 내걸었다. 새누리당은 펄쩍 뛰면서 핵심적 안보부처를 관장하는 외통위와 국방위 중 한 곳은 양보해도 야당이 요구하는 세 곳의 위원장은 절대 줄 수 없다고 맞섰다. 그러자 야당은 ‘박근혜 때리기’의 속내를 드러냈다. 세 위원장 자리는 포기할 테니, (정무위 소관인) 박지만·서향희 부부와 연관 의혹이 있는 저축은행비리, 그리고 (문방위 소관인) 정수장학회에 대한 국정조사와 청문회 개최를 받아들이라고 옥죄고 있다.

대통령선거는 승자독식의 블랙홀이다. 정권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이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다. 특히 여야 모두 양지와 음지를 두루 경험했던 터라 그 어느 때보다 대통령 선거에 올인하는 것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어느 당의 일원이기에 앞서 근본적으로 국민이 선출한 헌법기관이다. 그들 존재의 정당성은 바로 국민들로부터 나온다. 지역의 유권자들이 뽑아주고 가슴에 달아준 배지라면 당연히 국민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그것이 국회의원의 당연한 책무다.

무조건 국회 문부터 열어라

우리나라가 처한 내외 환경은 결코 녹록지 않다. 2008년 시작된 국제금융위기는 그리스, 스페인을 거쳐 유럽 발 경제위기의 쓰나미로 확산되고 있다. 만약 유럽 발 경제위기의 불길이 우리에게 옮겨 붙는다면 하반기 우리 경제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될 것이다. 또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은 자칫 한반도 주변을 고래싸움터로 만들고 그 와중에 우리는 새우등 터지기 십상이다. 우리나라 가계부채와 영세상인의 부채는 1000조원을 넘어섰다. 부동산 버블이 꺼지는 순간 서민들은 길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해 있다.

이번 19대 국회의 초선 의원은 148명이다. 이들이 살아왔던 경력과는 무관하게 국회의원의 기능과 업무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에 가깝다. 오는 9월 1일부터 정기국회가 열리고 국정감사를 한다. 400조원에 가까운 국가재정을 결산하고 예산을 짜야 한다. 또 각 상임위 별로 중차대한 국가정책을 심의하고 예산에 수반되는 법안도 손 봐야 한다. 그런데 19대 국회의원들은 자신이 앞으로 어느 상임위에 배속될지조차 깜깜인 상태다. 결국 엉터리 결산, 부실한 예산 심의, 졸속 입법은 피할 수 없는 숙명같이 따라 붙을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국회가 공전하는 것이 미안했는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들먹이며 20일까지 원이 구성되지 않으면 당 소속 의원들의 6월분 세비 15억원을 받지 않고 기부하는 안을 추진 중이란다. 전형적인 격화소양, 즉 신발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 격이다. 여야 정당의 대권놀음에 국정을 다듬어야 할 도끼의 자루가 썩어간다. 대한민국의 주인공은 대권주자가 아니라 바로 국민이다. 여야 모두 꼼수를 버리고 무조건 국회 문을 열어야 한다.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