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혜련] 사랑의 경고등
입력 2012-06-17 18:41
홀로 사시는 어머니가 쓰러졌다. 새벽 3시, “나 죽을 것 같아.” 아들에게 알리고는 전화기를 떨어뜨린 어머니. 구급차가 아파트 문을 따고 들어가 20분 만에 응급실로 모셨다. 83세 어머니는 4시간여 수술 끝에 기적적으로 생환하셨다. 병명은 대뇌동맥류 파열. 10여일간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넘나들다 입원실로 옮겼다. 온몸을 휘감은 의료기기 탓에 열흘 넘게 침대에 두 팔이 꽁꽁 묶였던 어머니. 신음소리가 처절하다.
필요한 물건을 챙기기 위해 어머니의 빈집을 열었을 때 새벽에 쓰러진 노인의 집이 맞나 싶었다. 손님 맞을 준비를 끝낸 것처럼 너무도 잘 정돈돼 있어 만약을 대비해 매일 주변정리를 해 오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머니 친구의 전화번호를 알기 위해 뒤진 수첩 안에 끼어 있는 누런 신문쪽지. 부서질 듯 낡은 그 쪽지는 20년 전 어머니에 대한 ‘빈 사랑’을 대단한 양 늘어놓은 내 글이었다. 어머니는 거기 적힌 딸의 사랑과 다짐을 굳게 믿고 외로울 때마다 꺼내보신 걸까.
바쁘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나는 어머니가 노쇠한 몸을 이끌고라도 날 만나러 오는 걸 당연히 여겼다. 어쩌다 내가 가겠다고 하면 “얘, 바쁜데 왜 시간 쓰고 기름 쓰고 오니?” 그렇게 말리셨다. 난 가끔 점심을 사드리고 용돈을 드리는 걸로, 그만하면 괜찮은 자식이라 생각해 왔다.
보호자로서 병원 서류의 빈칸을 메우면서 그런 생각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나는 그 서류마저 작성하기 힘든 괘씸한 자식이었다. 아버지와 사별 후 이사 간 어머니의 집주소도 몰랐다. 주민등록번호, 병원출입 경력, 혈압, 무슨 약을 들고 무엇에 알레르기 반응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 고령인 어머니가 위급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않고 휴대전화는 진동으로 해 놓고 잠을 청했다. 만약에 대비해 어머니 친구들의 전화번호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만하면 더 험한 비난을 들어도 싸다.
그뿐인가. 생사가 오가는 와중에도 내가 처리해야 할 회사 일부터 떠올렸다. 하루 두 번 20분씩 허용되는 중환자실 면회도 장기전을 우려해 여럿이 교대해야 한다고 우겼다. 하루 두 번 왕복하면 내 일에 지장이 크다면서.
뼈만 남은 몸, 틀니를 빼내서 100세가 넘어 보이는 어머니는 자식 앞에서 부끄러운 듯 멋쩍은 표정을 하신다. 어머니 얼굴에서 한번도 보지 못했던 타인의 표정이 생겼다 사라진다. 늘 공기처럼 우리를 소리 없이 감싸던 어머니, 그 연세에 무슨 일이든 척척 처리하던 어머니는 더 이상 그분이 아니다.
어머니는 앞으로 더 나빠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어머니의 사랑을 받기만 한 내가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도록 마지막 기회의 경고등을 깜빡깜빡 켜시는 것 같다. 나는 간구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지 않기를. 나는 감사해야 한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라도, 함께 있을 시간을 주신 어머니의 사랑에.
고혜련 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