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이춘근] 강화되는 한·미동맹

입력 2012-06-17 18:41


국제정치의 세계에는 국내정치와 달리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는 강력한 법과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경찰과 사법부가 자신의 안전을 지켜주기 때문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장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국가들이 모여 구성한 국제체제에는 국가들의 안전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다. 국제법이 있다 하나 강제성이 거의 없으며 국제사회의 약속과 규율도 강제성이 없다. 북한과 같이 약한 나라조차도 국제법이나 국제적 약속을 헌신 버리듯 한다. 그래서 국가들은 스스로의 힘을 증강시키려 노력하며, 힘이야말로 국제정치의 최종 수단이 되는 것이다. 국제정치를 힘의 정치라 말하는 연유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나라들은 힘에 버거운 국방비를 사용하고 있으며, 평소 국민생활에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탱크 전투기 군함 등을 사 모으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안보를 위해 채택하는 차선의 방법은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으며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나라와 군사동맹을 맺는 것이다. 군사동맹이란 두 나라가 친하다는 이유만 가지고는 맺어지지 않는다. 서로가 두려워하는 ‘공통의 적’이 있을 때 동맹이 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소련은 전혀 친하지 않았지만 나치 독일이라는 공통의 적에 대처하기 위해 동맹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 국력 증강을 반영한 것

1953년 한국전쟁 직후 체결된 한·미동맹은 이승만 대통령의 탁월한 외교력의 결과였다. ‘외부로부터의 적에 의해 위협 받을 때 두 나라는 함께 군사적으로 대응’한다는 약속인 한·미동맹은 소기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있는, 국제정치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동맹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미동맹은 60년 가까이 한반도에서의 전쟁 재발 방지에 성공했고, 한국은 미국이 함께 담당해 주는 국가안보 덕택에 6·25의 폐허 위에서 단 두 세대 만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한·미동맹에 부침도 있었다. 1970년대 말엽 이후 자본주의의 발전 방식을 따르기 시작한 중국, 1990년 소련 및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 등 국제공산주의의 소멸은 북한의 위협도 곧 해소될 것이라는 낙관을 갖게 했다. 이 시기 동안 한·미동맹은 서서히 약화되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국 내에는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념적인 반미주의자들과 종북주의자들마저 창궐하기 시작했다. 한·미동맹 폐기를 위해 노력하는 세력들도 적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사실상 한·미동맹의 해체라고 볼 수 있는 한미연합사 해체 및 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군 단독 행사 약속도 이뤄졌다.

이러는 와중에 살아남는 데 성공한 북한은 핵보유국임을 헌법에 명기했고, 3대 세습왕조 국가가 되어 대한민국 전역을 김일성주의가 지배하는 왕국으로 만들겠다고 저러고 있다. ‘평화적인 부상’을 구호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에 등극한 중국은 지난 수십년 동안 경제발전 속도보다 거의 두 배 빠른 속도로 군사력을 증강시켰다. 아시아 바다 전체를 자국의 바다라며 주변의 모든 나라와 영토분쟁을 벌이는 중국의 등장은 대한민국의 우려가 아닐 수 없다.

주변국 압박하는 中 견제카드

해체의 길을 향해 가던 한·미동맹이 부활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군 단독 행사, 한미연합사 해체 시기를 2015년으로 연기한 바 있다. 최근 주한미군사령관 서먼 대장은 연합사령부의 지속을 제안했고, 한강 이북의 미군이 잔류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새로이 형성된 동북아 안보 상황이 한·미동맹을 다시 작동하게 만든 것이다. 이번에는 미국이 한·미동맹 강화에 더욱 적극적이라는 사실이 특이하며 이는 한국의 국력이 훨씬 증강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