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종로 (11) 새성전 건축 에피소드 “하나님, 벽돌 값 주세요”

입력 2012-06-17 18:16


1987년 신림제일교회 새성전을 건축할 때의 일이다. 뜻하지 않게 신출내기 집사인 나도 건축위원에 들었다. 교회에선 벽돌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내가 건축 과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여긴 모양이었다. 나는 일단 벽돌과 블록 70만장을 납품하고 500만원을 건축헌금으로 약정했다. 건축헌금을 제하고 내가 400만원 정도를 교회 건축위원회로부터 받아야 하는 셈이었다.

한데 건축과정이 순조롭지 못했다. 워낙 준비가 덜 된 상태로 시작해서인지 재정적으로 계속 애를 먹었다. 내가 봐도 딱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더 사정이 딱한 쪽은 나 자신이었다. 교회건축에 물린 돈 때문에 공장을 제대로 돌리기 어렵게 된 것이다. 영세한 사업장이다 보니 자금이 어느 정도 회전돼야 하는데, 딱 멈춰서 버리니 어려움이 말이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때는 다른 공사장에서도 애를 먹였다. 몇 차례 목사님을 찾아가 내 사정 이야기를 했지만 목사님은 난처한 표정으로 “기도해봅시다”라는 말씀만 계속 하셨다. 목사님의 형편도 딱하고, 소위 건축위원이랍시고 이름을 걸어놓은 내 형편도 딱했다. 건축위원이 담임목사에게 “벽돌 값 주시오, 벽돌 값 주시오” 하고 있으니 말이다.

혼자서 고민을 하다 한 번만 더 부탁을 해보고 안 되면 교회를 떠나기로 마음먹고 목사님을 찾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예상대로 목사님은 많이 미안해하시면서 “기도해봅시다”라고 말씀하셨다. 목사님을 만나고 나오는 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허무감이 밀려들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돈 때문에 교회를 떠나야 하다니…. 그런데 그때 생각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목사님이 수십 번이나 “기도해봅시다”라고 했는데도 정작 나는 혼자서 한번도 기도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도 한번 기도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벽돌 값 주세요. 돈이 없어 공장을 못 돌리게 됐습니다. 하나님, 벽돌 값 좀 주세요. 하나님 아버지…”

다른 말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벽돌 값 주세요’와 ‘아버지’라는 두 마디밖에는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버지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제대로 불러보지 않은 아버지라는 호칭이었다. 그 호칭을 지금 내가 부르면서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럴 때마다 가슴이 떨리면서 뜨거워지는 건 또 웬 일인지 몰랐다. 그런 가운데 어떤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물론 귀로 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음성으로 받아들였다.

“그래, 너는 네 아버지 집 짓는데 벽돌 좀 내놓고 벽돌 값 안 준다고 이 난리냐. 아비 집 짓는 데 쓴 벽돌 값 내라고 성화부리는 아들놈이 세상에 어디 있다더냐.”

내가 바라는 건 “그래 그동안 마음고생 했다. 이제 벽돌 값 주겠다”는 말이었는데, 전혀 엉뚱한 답이었다. 좌우간 그 음성 같은 무엇 때문에 생각이 온통 헝클어졌다. 그리곤 이내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지당하신 말씀이라고 여겨졌다. 아들이 아버지 집 지어놓고 벽돌 값 달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러면서 희한한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라고 불러도 좋을 분이 계시다면 벽돌 값 같은 건 한 푼도 안 받아도 좋다는 것이었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즉시 벽돌 값을 건축헌금으로 바친다는 내용을 적고는 봉투에 담아 목사님을 찾아가 두 손으로 내밀었다. 두 번 다시 벽돌 값을 입에 올리는 일이 없을 거라는 말도 했다. 목사님은 놀라서 두 눈이 둥그레지셔서 나를 바라봤다. 내 눈동자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리곤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 아버지! 제게도 이제 아버지가 계십니다. 하나님은 제 아버지고, 저는 하나님의 아들이지요.”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