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군부가 사실상 정국 장악… 헌재 “의석 ⅓ 불법 당선… 의회 해산” 명령

입력 2012-06-15 19:10

시민의 피로 이뤄낸 이집트 혁명이 좌초 위기에 처했다. 이집트 헌법재판소가 이슬람 정당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의회의 해산을 명령함에 따라 군부가 헌법을 제정할 수도 있게 됐다. 미국 CNN은 “이집트 헌재 결정은 조용한 군사 쿠데타”라고 규정했다.

이집트 헌재는 14일(현지시간) 하원의원 가운데 3분의 1이 불법적으로 당선됐고 이에 따라 전체 의회 구성도 불법이라며 의회 해산 명령을 내렸다고 관영 메나통신이 보도했다. 현재 이집트 헌재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임명한 재판관들로 구성돼 있다. 의회 해산 명령에 따라 입법권도 군부로 넘어갔다. 신임 대통령의 권한을 규정한 헌법이 없어 대통령이 선출되더라도 군부가 대통령의 권한을 흔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군부가 아예 헌법 초안을 마련할 제헌 의회를 구성할 수도 있다. 무슬림형제단의 대통령 후보가 당선될 경우 군부가 제대로 권력을 이양할지도 미지수다.

의회의 46%를 차지하고 있는 무슬림형제단은 성명을 통해 “현재 이집트는 무바라크 정권 때보다 더 위험하고 어려운 시기를 거치고 있다”며 “혁명으로 성취한 민주주의의 열매가 모두 사라질 위기”라고 밝혔다.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누르당도 “이번 판결은 유권자의 자유의지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헌재는 또 무바라크 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아흐메드 샤피크 후보의 대선 출마 자격도 인정했다. ‘정치적 격리법’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다. ‘정치적 격리법’은 ‘무바라크 정권에서 고위 공직을 지낸 인사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는 내용의 법안이다.

모하메드 모르시 무슬림형제단 대통령 후보는 판결 직후 “국가기관과 권력분립의 원칙을 존중하기 때문에 헌재 결정을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후 기자회견에서 “소수가 국가를 퇴보시키고 있다”면서 “모두 투표소로 가 그러한 범죄행위에 반대표를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신들은 일제히 헌재 판결이 이집트 민주화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헌재 결정은 군부로의 회귀”라며 “헌재가 이집트 혁명의 가장 소중한 성과를 무너뜨렸다”고 비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대선을 이틀 앞둔 상황에서 헌재가 이집트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면서 “대선이 공정하게 치러질지, 새 의회가 언제 구성될지 등 모든 게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헌재 판결에 분노한 시민들은 타흐리르 광장으로 몰려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매주 금요일 기도회가 열려 기도회가 대규모 시위로 번질 우려도 큰 상황이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