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을 기다리는 詩의 경지… 유안진 시집 ‘걸어서 에덴까지’

입력 2012-06-15 18:28


시란 어떤 의미에서 초월의 장르라고 할진대, 원로 시인들의 경우에 ‘초월’은 필생의 화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새 원로 대열에 들어선 유안진(71·사진) 시인에게 초월은 헛된 가상에 불과하다.

그의 신작 시집 ‘걸어서 에덴까지’(문예중앙)는 나이가 들수록 삶을 내부로 확장하려는 관조의 힘이 출렁거린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게 되어 있는 건 기다림이 아니다/ 기다림에 길들여져/ 기다릴 게 없다는 것이 견딜 수 없어서/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기다림을 기다린다/ 위대한 허무란/ 기다릴 게 없는데도 기다리는 것이다”(‘기다림을 기다린다’ 부분)

시인은 ‘기다림’을 아직 도래하지 않은 어떤 시간을 향한 마음의 포즈가 아니라,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행위로 받아들이고 있다. 기다림 자체를 하나의 완성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기다림을 기다린다’는 말을 성립시키기 위해 그가 인생을 얼마나 관조하며 기다려 왔는지 새삼 놀랍다.

“형이니, 아이이니, 딸애이니/ 져주면 편하다고/ 지는 게 이기는 거라던 어머니// (중략)// 모름지기 시인이란/ 지는 것으로서 이기는 자라는 사르트르의 시인론을/ 사르트르도 모르면서 어찌 아셨을까?/ 어머니, 성묘 가야겠다”(‘시인론, 지며 살아야’ 부분)

사르트르의 시인론까지 가지 않더라도 옛 어른의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는 것을 일상 속에서 문득 발견할 때 그 삶의 내부는 관조로 인해 부풀어 오른다. 어쩌면 돌아가신 어머니야말로 대중 속에 묻혀 있었던 선각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이런 시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은자(隱者)들은 대도시에 숨어 산다/ 거리에 버스에/ 지하철에 아파트에 숨어서/ 초야에 묻힌다는 편견을 깬다/ 새로운 편견이 깨어나도록”(‘서울이 더 초야이다’ 부분)

시인이란 지는 것으로서 이기는 자임을 일찌감치 깨달은 유안진은 유안진을 초월하려고 하지 않는다. 초월하지 않고 존재를 심화시키는 경지를 보여주는 게 이 시집의 크나큰 수확일 것이다. “풀밭에 흩어진 감나무 잎새 옆에/ 익은 알감도 한 개 떨어져 있다/ 돌아서니 노란 모과도 두 알이나 던져져 있다// 후진 뜰이 환하니 정겹다// 그려도 그림이고 지워도 그림이듯이// 삶도 꿈 몇에 갇힐 수는 없지/ 꿈 밖의 무한이 더 꿈이고/ 삶 밖의 죽음이 더 삶이라는 듯이”(‘꿈밖이 무한’ 전문) 나이가 들수록 시를 갱신시키고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