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단련된 1m50 女 세계 챔프 ‘김단비’… “링 오를땐 늘 ‘내게 강같은 평화’ 불러요”

입력 2012-06-15 23:32


공부보다 운동이 좋았던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미니멈급(47.620㎏) 세계 챔피언 김단비(21·한경대 스포츠과학과 3년). 그녀의 별명은 ‘작은 탱크’다. 맷집을 기르기 위해 매를 맞는 것처럼 인생도 연단을 잘 견뎌야 승리할 수 있다고 여기는 그녀는 그 어떤 상황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공부를 그리 잘하지 못해 콤플렉스가 있었고. 150㎝ 단신의 핸디캡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복싱을 택했다는 그녀의 인간승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도전을 함께 준다.

“권투는 그 어떤 운동보다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또 열심히 연구하고 몸을 만들어야 하고 상대의 비디오 분석도 잘해야 합니다. 저도 상대 선수의 장단점과 버릇을 메모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다음 달 23일 오후5시, 경남 창원 실내체육관에서 갖는 3차 방어전 상대는 주지스 나가야(25·필리핀)다. 영리한 선수라고 소개하는 김단비는 “나가야가 기본적으로는 인파이터인데, 전적이 많아 노련미가 있어 보인다. 머리싸움이 치열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10전 7승 1무 2패(2KO승)의 전적을 기록 중인 김 선수가 3차 방어전을 창원에서 연 특별한 이유가 있다. 김 선수의 아버지 김성철(58·보린교회 집사)씨가 딸이 고향에서 멋진 경기를 갖는 것을 소원했던 것. 몇 달 전 아버지의 심장 수술비를 대는 것은 물론, 밤낮으로 병 수발을 했던 김 선수는 아버지의 소원에 흔쾌히 응했다고 한다.

1960∼80년대 복싱은 프로든 아마추어든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한국은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 복싱 12개 전 체급 우승이라는 믿기 어려운 성적도 올렸다. 세계 타이틀 매치가 열리는 날이면 TV 중계하는 다방이나 술집은 만원 사례였고 경기장은 관중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 타이틀 매치를 해도 중계방송을 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방송국이 없을 정도가 됐다. 복싱의 인기가 썰물처럼 순식간에 사라진 것.

김단비는 복싱선수들이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경기에 참가해 메달을 따는 극소수 몇 명을 제외하고는 장성한 뒤, 대부분 설자리가 없다고 했다. 그러다 뒷골목으로 내몰리는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모두가 외면하는 이유는 피부에 와 닿는 내 일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건전한 삶을 유도하는 방법은 국민들이 예전에 가졌던 권투에 대한 관심과 애정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싱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권투 선수라는 직업과 어울리지 않게 아마 바둑 4단이기도 한 김단비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찐 살을 빼고 싶어 권투 도장에 나가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바둑을 시작한 제가 하루종일 바둑판과 씨름하다 보니 살이 많이 쪄 있더라고요. 그래서 날씬해지고 싶어 시작한 게 권투입니다. 그런데 권투가 바둑보다 더 파워풀 하고 적성에 맞았어요. 제가 평소 얌전하지만 링에 오르면 호랑이처럼 아주 저돌적으로 변합니다.(웃음)”

그녀의 평소 체중은 53㎏. 경기 일정이 잡히면 한 달 전부터 5㎏ 감량에 들어간다. 아침에 뛰고 오후에 운동하고, 음식을 조절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하며 운동에 전념하면 어느새 원하는 체중으로 돌아온다. 앞으로의 계획은 WBC나 WBA 통합 챔프 도전하는 것이다. 통합 챔피언이 되면 상금으로 부모님을 편하게 모시고 싶단다. 부모님이 자신을 낳아주고 정성으로 길러준 것에 항상 감사한다는 김단비는 “부모님은 하나님 다음으로 소중한 내 인생의 큰 스승”이라고 했다.

서울 보린교회(허재근 목사)에 출석하는 김단비는 링에 오르기 전 빠짐없이 기도한다. 고 3때 2009년 10월 15일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할 때도 복음성가인 ‘내게 강 같은 평화’를 관중에게 들려주며 링에 올랐다.

“담임목사님과 부모님이 운동하는 곁에서 늘 기도해 주세요. 그러니 경기 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 없죠. 하나님, 부모님 고맙습니다. 후원해주시는 주위의 분들도요. 더욱 열심히 훈련해 세계타이틀을 지키고 크리스천으로 부끄럽지 않은 복싱 선수가 되겠습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