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유로존] 그리스 또 뱅크런 공포… 하루 8억 유로 빠져나가
입력 2012-06-14 19:09
그리스에서 유로 탈퇴 분수령이 될 2차 총선 날짜가 점점 다가오면서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 사태) 공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자국 화폐인 드라크마로 돌아갈 경우 예견되는 초인플레를 우려해 사재기 현상도 처음 등장했다.
13일 영국 BBC 방송과 미국 CNBC 방송 등에 따르면 5월 1차 총선 때 연정구성 실패 후 나타났던 대규모 예금 인출 현상이 17일 총선을 앞두고 한 달여 만에 재등장했다.
최근 수일간 예금을 빼내려는 예금자들이 크게 늘어나 주요 은행들의 하루 예금인출액은 최대 8억 유로(약 1조1600억원)에 달한다고 CNBC는 전했다. 중소 은행에서도 많으면 3000만 유로까지 빠져나가고 있다. 한 은행원은 “현금이 인출될 뿐 아니라 빼낸 돈으로 전신송금, 미국채권 등에 재투자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2차 총선을 앞두고 친(親)구제금융을 내건 보수 신민당과 구제금융 조건 폐기를 주장하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막상막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구제금융 조건을 준수하지 않으면 추가자금 지급은 없다고 못 박았다. 이런 가운데 총선이 임박하면서 법적으로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어 있으나 일부 정당이 왜곡된 여론조사 결과를 흘리고 있고, 특히 12일에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오차범위 이상의 우세를 보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시민들의 탈유로존 공포를 키우고 있다.
위기가 시작된 2009년 말 이래 그리스에선 총 720억 유로의 예금이 빠져나갔다. 3, 4월 잠잠했던 예금 인출 현상은 5월 총선 직후 절정에 달해 한 주 사이 7억 유로가 뭉텅이로 빠져나가기도 했다.
시중은행 간부는 AP통신에 “예금 인출이 지속되고 있지만 5월에 비해 심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간부는 “좌파 시리자가 승리할 경우 상황이 어떻게 돌변할지 예측하기가 힘들다. 모든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며 불안감을 표시했다.
로이터통신은 인출된 현금으로 식량 사재기도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실리스 코르키디스 그리스소매연합 대표는 “유로를 안 쓰고 옛 화폐인 드라크마를 쓸 수 있다는 공포가 이런 현상을 낳고 있다”며 “(인플레로 돈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냉장고를 식료품으로 채우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드라크마를 쓸 경우 인플레가 50%에 달할 거라는 전망도 있다.
크레딧스위스 은행은 특히 (그리스 같은) 약소국의 유로존 이탈의 경우에도 유럽 은행들의 자산가치가 58% 증발할 수 있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았다고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특히 몇몇 대형은행만 생존할 수 있고, 은행들이 3700억 유로의 천문학적 손실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