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명품
입력 2012-06-14 18:36
이름난 물건이나 작품을 일컬어 명품이라 한다. 그러나 명품이란 용어가 본래의 의미를 잃은 우리나라에서는 해외의 값비싼 유명 브랜드를 지칭하는 것으로 곧잘 사용된다. 이를테면,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페라가모 등이 여기에 속한다. 구찌 등 몇몇 상표는 그다지 비싸지 않아 명품 반열에서 멀어졌다고 한다.
사실 진정한 명품이라고 하면 품위 있고 믿을 수 있는데다 우아해야 한다. 그러나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이른바 ‘명품’은 그냥 비싼 물건일 뿐이라는 평이 많다. 우선 비싼 돈을 주고 산 명품 가방이나 핸드백에 이상이 생겨 수선을 부탁하면 국내에 부속품이 없어 본사까지 가야 한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몇 개월을 끈다고 한다.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품의 수선비도 소비자 부담이다.
명품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사후서비스(AS)를 제대로 해주지 않자 틈새시장까지 생겼다. 사설 명품 수선점이 여러 곳 생겨 호황을 누리고 있다.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구입해도 몇 년간 품질보증을 해주고 무상수리기간에는 공짜로 부품까지 갈아준다. 그렇지만 1500만원짜리 명품가방도 팔고 나면 그뿐이다.
문제는 비싼 값을 부르며 배짱장사를 해도 명품 수요가 줄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서만 유독 명품이 잘 팔리는 현상을 형식에 치중하는 유교문화의 잔재로 보는 시각도 있다. 남이 쉽게 가질 수 없는 상품을 손에 넣었다는 뿌듯한 자부심이 만족감을 배가한다는 말이다. 이런 점을 악용해 일부 명품 판매상은 물건을 주문받고도 바로 살 수 없다며 일부러 몇 개월씩 기다리게 하기도 한다. 사실은 재고품이 많아 바로 팔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케팅 차원에서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고가 수입 브랜드의 가격, AS 문제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번 기회에 고가 수입 브랜드를 명품으로 불러온 관행을 아예 뜯어 고쳐 대체용어까지 찾아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밝힌 것이다. 이름만 명품이지 그냥 비싼 잡화에 불과한 외제 물건의 실체를 바로 알리겠다는 각오다.
희소성의 원리에 따라 값이 매겨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소비자원의 다짐이 꼭 성공하리라는 확신은 없다. 다만 소비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따지는 자세는 필요하다. 국산 명품의 AS가 제때 되지 않으면 고함을 치고 항의하면서도 고가 수입 브랜드의 횡포에는 입을 닫는 사대주의적 습성은 버렸으면 한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