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350리 적시며 흐르는 ‘영산강 이야기’… ‘강은 이야기하며 흐른다’
입력 2012-06-14 17:57
강은 이야기하며 흐른다/한승원/김영사
“운명이 손금(手相)에 나타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손금에 운명선이 있는데, 그 운명선을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도록 파 옮기는 성형수술을 하면 운명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강은 그 땅의 손금 같은 운명 줄이다.”(13쪽)
일찍이 박목월은 시 ‘나그네’에서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라고 노래 불렀다. 외줄기 길이란 첫 연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로 미뤄 짐작할 때 남도 산하 350리를 적시며 흐르는 영산강에 대한 비유일 수도 있다. 소설가 한승원이 그 강을 따라 답사에 나섰다. 시발점은 영산강 시원인 전남 담양 가마골이다. “영산강의 시원이라고 알려진 용소에 이르렀다. 노자의 곡신을 연상시켜주는 가마골 한 가운데에 용소가 있다. 용추산의 여러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용소로 몰려든다.”(20쪽)
가마골 일대는 1950년 이전까지 원시림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6·25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큰 나무들이 벌목됐다. 또한 1950년 늦여름, 유엔군의 인천 상륙작전과 국군의 반격에 밀리기 시작한 담양 화순 광주 일대의 인민군과 그들을 따르던 부역 세력이 북으로 가지 못한 채 은거하던 곳도 가마골이다. 가마골을 돌아나오던 저자는 상념에 잠긴다. “‘가마’란 말은 어원상으로 볼 때, ‘감’이란 말에서 오지 않았을까. ‘감’은 ‘검’, ‘곰’과 같다. 이 말들은 신 혹은 신령스러운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가마골은 ‘감골’이고 용이 승천한 신령스러운 골짜기라는 뜻이다.”(23쪽)
가마골을 나온 발걸음은 담양호 제방으로 들어가는 담양군 밤골로 이어진다. 영화로도 패러디됐지만 그곳은 부패 권력층을 희롱하고 가렴주구에 절망한 백성을 도왔다는 전우치 전설이 스며있는 곳이다. 거기서 담양 읍내를 관통하는 메타세콰이어 길을 따라가면 송강 정철이 사미인곡을 읊조렸던 송강정이 나온다. 영산강 유역에서 저자를 가장 황홀케 한 곳은 영암 땅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그윽한 분위기가 떠도는 곳이 왕인 박사가 태어난 구림이다.
이윽고 영산강은 흘러서 목포 앞바다에 닿는다. 목포에 이르러 저자는 이난영이 애절한 목소리로 부른 ‘목포의 눈물’을 떠올린다. 담양 가마골의 한 방울 물에서 시작된 영산강이 바다로 흘러들기 전, ‘목포의 눈물’ 한 방울을 보탠다는 사실은 남도 삼백리의 강줄기를 더듬는 나그네에게 묘한 의미를 던져주고도 남는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