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종로 (10) 세상에서 처음 만난 ‘하늘의 사람’ 故 장홍수 목사

입력 2012-06-14 18:06


믿음이 있든 없든 교회에 계속 나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서 어떤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리고 획기적인 변화는 아니었지만 이슬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내가 변한다고 느껴졌다.

그때 내게는 신앙적인 체험이 없었다.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수술한 뒤 골수염이 완치된 데 대해 아내가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흥분했지만 솔직히 나는 맨송맨송했다. 성령의 역사하심은커녕 성령이 계시다는 것도 모르는 나였다. 그래도 사람에 대해서는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보여주는 인격에 대해서는 나 자신이 감응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돌아가신 장홍수 목사님의 인격은 내 감정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내가 장 목사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러니까 아내의 얼굴을 보아서 교회에 발을 들어놓았을 때 나는 목사님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교회에 억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되도록 목사님과 마주치지 않고 싶었다.

그러나 목사님을 자꾸 접하면서 뭔가가 느껴졌다.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분은 자신의 일, 즉 예수를 알리는 일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어 보였다. 신앙적으로 무식한 내가 봐도 그분의 성함 앞에 붙는 ‘노아’와 너무 비슷한 것 같았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 하나님도 죽일 수 없었던 단 한 명의 인간이면서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했던 인간 말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장 목사님의 예배드리는 모습을 관찰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강단으로 오를 때의 발걸음과 눈빛에서부터 말씀을 전하는 자세, 헌금을 바치는 모습 등을 일일이 체크했다. 그렇게 한동안 장 목사님을 관찰하고서 그분에 대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성자였다. 목사님은 주변의 그 무엇도 의식하지 않고 홀로 하나님 앞에 서 있을 뿐이라는 듯한 거룩한 몸가짐을 항상 보여주셨다.

아무튼 장 목사님은 내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만난 ‘하늘의 사람’이었다. 자기를 비운 사람, 자기를 예수에게 정말로 바친 사람, 설교보다는 무언(無言)으로 사람을 바꾸는 사람이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장 목사님을 만난 걸 큰 축복이라고 여긴다. 평신도로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인가. 목자를 제대로 만나는 게 아닌가. 예수를 보여주고 예수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목자를 만나는 것이 아닌가. 장 목사님은 내게 그렇게 해주셨다.

그랬다. 내가 죄악의 생활을 청산하고 믿음 생활을 하게 된 것도, 내가 예수를 만났다고 선언할 수 있게 된 데에는 그분의 도움이 컸다. 술 마시고 도박에 미치고 색정에 눈이 멀어 영적인 소경이나 다름없었던 나, 그래서 그냥 놔두었더라면 병들거나 거지가 되어 죽어도 할 말이 없었던 나를 진리요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해주신 분이다. 나의 영적인 스승이다.

장 목사님을 생각하면 수많은 추억들이 떠오른다. 내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장 목사님에 대해 너무 길게 이야기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로선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그분에 대한 이야기는 책을 써도 몇 권을 쓸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그분의 소천 때의 일은 꼭 밝히고 싶다.

장 목사님은 8년간 폐암 투병을 하면서도 조금도 소홀함 없이 목회를 하시다가 2004년 4월 20일 수요일 밤 11시쯤에 주님 곁으로 가셨다. 임종 직전 교회를 대표해서 딱 한 사람만 병실에 들어오라고 해서 내가 들어갔을 때 목사님은 사모님을 부탁하신다는 말씀과 함께 절대로 중환자실로 옮기지 말고 일반 병실에서 예배드리다가 부름 받도록 해달라고 하셨다. 실제로 목사님은 그렇게 일반 병실에서 성도들과 예배를 드리다가 숨을 거두셨다. 나는 과분하게 장례위원장을 맡아 사흘간의 모든 예식을 감당했다. ‘아, 노아 장홍수 목사님. 너무너무 목사님이 그립습니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