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여성들의 ‘독거 투쟁’… 현행법으론 ‘여성은 아버지·남편과 살아야’
입력 2012-06-13 19:04
시골 출신 이란 여대생 슈코페흐(24)가 수도 테헤란 소재 대학 영문과에 입학한 뒤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거주할 아파트를 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부동산중개업소보다 먼저 들른 곳은 보석가게. 5달러짜리 싸구려 결혼반지를 산 그녀는 ‘아가씨’였지만 중개업소를 찾아다니며 결혼반지 낀 손을 보란 듯 내밀어야 했다.
여성은 아버지나 남편과 살아야 한다는 전통적 관념이 지배하는 이란에서 그녀는 이렇게 거짓말을 해야 아파트를 구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삼종지도(三從之道)’ 같은 낡은 윤리가 지배하는 21세기 이란에서 젊은 독신 여성들이 벌이는 ‘독거(獨居)투쟁’을 뉴욕타임스(NYT)가 12일 소개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테헤란 등의 대도시에선 혼자 사는 여성들의 삶이 트렌드로 부상할 만큼 숫자가 증가일로다.
이곳에서는 독신녀를 생활이 문란하거나 사회적응에 문제 있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하지만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서구문화가 흘러들어오면서 여성들이 인습에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대졸 여성은 가파르게 늘어 현재 대학 등록 학생의 60%가 여성이다. 이들은 눈높이가 높아져 신랑감을 찾는 일도 어려워졌다.
같은 기간 이혼이 135% 증가한 점도 여성의 싱글 라이프를 확산시킨 요인이다. 위성TV나 페이스북, 외국 여행 등도 여성의 가치관을 빠르게 바꾸었다. 슈코페흐는 “대도시에서는 이제 여성의 싱글라이프가 대세”라고 말했다.
전통문화를 고수하려는 보수정권과 성직자들이 여러 수단을 동원했지만 트렌드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란의 문화혁명최고위원회는 2006년 여성들의 결혼지참금을 줄여주는 조처를 취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대학생 단체결혼식을 주선하고 신혼부부에게 저리 융자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식을 패스트푸드처럼 만들었다는 비판만 돌아왔을 뿐 흐름을 거스르는데 실패했다.
약물중독 남편과 이혼 후 혼자 사는 화장품 회사 간부 나자닌(35)은 “싱글 여성들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로 최근 이사왔다”면서 “혼자 사는 게 훨씬 좋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