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찰 수사 결과 발표] 靑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檢… 결국 면죄부만 주고 수사 끝내
입력 2012-06-13 19:07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재수사한 검찰은 이번에도 청와대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했다.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과정에서 청와대 고위인사들의 연루의혹이 제기됐지만 소환조사할 근거도 찾지 못한 채 해명만 들어주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검찰은 13일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불법사찰의 ‘윗선’으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증거인멸의 ‘몸통’으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지목했다. 배후 의혹이 제기된 정정길·임태희 전 대통령 실장은 서면조사에 그쳤다. 검찰은 “그들을 소환해 물어볼 만큼 조사가 진척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그러나 청와대 고위인사 조사에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다.
검찰은 압수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 문건에서 ‘VIP(대통령) 보고는 공직윤리지원관→BH(청와대) 비선→VIP(또는 대통령실장)로 하고’라는 내용을 발견했다. 문건내용이 맞다면 2008년 6월부터 2010년 7월까지 대통령실장을 지낸 정 전 실장이 불법사찰 내용을 보고받았을 것으로 의심됐다. 검찰은 그러나 정 전 실장을 수사 막판에 서면조사하는 데 그쳤다. “수사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해 소환해봐야 추궁할 게 없다”는 이유였다. 1차 수사 당시에도 ‘B·H 하명’이라는 메모 등이 발견됐지만 검찰 수사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임 전 실장은 불법사찰 관련자 가족에게 위로금을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으나 검찰은 서면조사만 했고, 수사결과 발표문에도 그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증거인멸 또는 검찰수사 개입 의혹이 불거진 민정수석실 관계자들 조사도 형식적이었다. 장석명 민전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과 김진모 전 민정2비서관(현 서울고검 검사)는 수사 막바지에 비공개로 소환조사했다. 장 비서관은 지난해 4월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에게 ‘관봉’ 5000만원을 전달한 배후로 의심을 받았고, 김 전 비서관은 1차 수사 당시 검찰에 압력을 행사한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이 증거인멸을 요구하는 것을 직접 보거나 들은 사람이 없어 증거인멸에 개입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민정수석실 개입 의혹을 제기하는 진술에 대해선 ‘오해’나 ‘착오’로 치부했다.
증거인멸이 이뤄지던 시점에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아예 조사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권 장관이 자발적으로 서면진술서를 보내기도 했다. 결국 이번 수사는 애초부터 권 장관과 청와대의 일정한 윗선은 배제해 놓고 수사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노석철 기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