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찰 수사 결과 발표] 재수사 발표 부실 논란… 500건 중 3건만 혐의 인정, ‘윗선’도 왕차관으로 끝

입력 2012-06-13 21:55


검찰이 확인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500건 조사 대상에는 대법원장, 국회의원, 정부 주요 기관장, 지방자치단체장, 공기업 사장은 물론 그룹 총수, 시민단체 대표, 언론사 사장, 노조위원장, 방송인까지 망라돼 있다. 이 가운데 검찰은 T개발 관련 불법사찰 등 3건만 기소했다. 박영준(52·구속기소)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비선라인이 권력을 사유화하며 불법사찰을 저지른 사실도 드러났다.

◇누가 어떤 사찰을 받았나=검찰이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에 대한 적법한 감찰 활동으로 분류한 것은 199건이다. 여기에는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주요 권력기관장이 포함됐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김성호 당시 국정원장이 이명박 정부의 국정 철학을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지 파악해 보고했다.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의 경우 동생이 부산에 있는 유흥주점에 투자해 뒤를 봐줬다는 제보가 있어 확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은 골프 회동을 하면서 인사 청탁을 한다는 정보가 있어 동향을 보고한 케이스다. 모강인 당시 해양경찰청장에 대해서는 농지법 위반과 관련해 조사한 내용을 보고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소문이나 인터넷, 신문 기사를 검색해 정보를 수집하거나 동향을 파악해 보고한 것은 111건이다. 여기에는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야당 국회의원, 엄기영 당시 MBC 사장 등이 포함됐다. 이 전 대법원장은 2009년 2월에 작성된 문건에 등장하는데 제목만 있고 사건 내용도 없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이명박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법원장의 동향을 면밀히 파악해 보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문건은 2009년 7월에 작성된 것으로 박 시장이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로 활동할 때 동향을 보고한 것이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민주통합당 이석현 의원에 대해서는 후원회 관련 동향을 파악해 지원그룹의 실체를 다룬 문건이 작성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박준영 전남지사에 대한 문건은 교수로 채용된 딸에 관한 잡음을 정리했다. 이 밖에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이건희 회장, 김문수 경기지사 등은 제목만 있거나 목록에만 나오고 내용이 없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윤석만 당시 포스코 사장에 대한 동향 파악 문건에는 윤 사장과 주변 인물의 친소관계 등이 담겨 있다. 검찰이 윤 사장을 조사한 결과 포스코 회장 선임 주주총회를 앞두고 감시한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본인이 직접 사퇴 요구를 받거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해 수사를 종결했다.

◇실체 드러난 비선라인=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을 주도한 비선라인의 실체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박 전 차관으로 이어지는 ‘영포라인’(영일·포항 출신 인사)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 전 비서관이 260여건, 박 전 차관은 40여건의 보고를 받아 사찰에 깊숙이 관여한 사실을 확인했다. 진경락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중요 내용과 비공식적인 내용을 이 전 비서관에게 보고하면 이 전 비서관이 공식라인인 민정수석실을 배제하고 당시 국무차장이던 박 전 차관에게 전화로 보고하는 식이었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