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째포 무용수’ 고영희
입력 2012-06-13 18:51
북한에서는 북송교포를 비하해 ‘째포’라고 부른다. ‘째포’ 부모의 자녀들이 출세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요즘은 사정이 좀 나아졌다지만, ‘째포’가 북한 주민과 결혼하기도 쉽지 않다. 배격해야 할 자본주의 문물에 젖은 불순분자쯤으로 여겨지고 있는 탓이다.
북한 당국이 이 점 때문에 고민 중인 듯하다. 김일성의 증조부까지 ‘혁명가 집안’으로 둔갑했고,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이 ‘백두산 여장군’으로 추앙된 지 이미 오래다. 세습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조작이다. 김정은이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만큼 김정은의 어머니 고영희 우상화도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고영희가 ‘째포’라는 데 문제가 있다.
고영희는 1960년대 일본에서 북한으로 건너갔다.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하다 70년대 중반부터 2004년 암으로 숨질 때까지 김정일과 살았다. 전화 교환수였던 김영숙, 영화배우 성혜림에 이은 김정일의 세 번째 처다.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웠으나 관영매체에 등장한 적은 없다. 세 번째 부인인데다 출신성분이 걸림돌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런 난관에도 고영희 우상화 작업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이 지난 10일 보도한 ‘위대한 선군 조선의 어머님’이란 제목의 1시간 30분짜리 북한 영상이 징표다. 영상에서 고영희는 김일성 모친인 강반석, 김정일 모친인 김정숙에 이어 ‘위대한 모친’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이 영상은 김정은이 실권을 장악한 지난달부터 조선인민군 및 노동당 간부 등을 대상으로 상영되고 있다.
그런데 마이니치에 따르면 이 영상에 고영희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어머님’으로 불릴 뿐이다. 재일교포라는 언급도 없다. 이를 본 간부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리은실’이라는 이름이 추가된 영상이 새로 제작됐다고 한다. 앞으로도 고영희 우상화가 지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째포 무용수의 아들’이라는 점은 감추려 들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의 정통성에 상처가 생길 수 있다는 게 북한 당국 판단이란다. 인간의 도리마저 저버린 행위다. 그만큼 권력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북한 주민의 50% 정도는 고영희가 ‘째포 무용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게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북한 당국이 어떤 교언(巧言)을 쏟아내도 고영희 우상화 작업이 원만하게 진행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건 아닐까.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