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박선이] 뿌리의 발견

입력 2012-06-13 18:30


나는 도시보다는 시골이 좋다. 빌딩 숲보다 나무숲이 100배 넘게 좋고 복잡함보다는 한적함이 좋기 때문이다. 태백의 산골짜기에 사는 이유에 대해 대천덕 신부님이 “나는 도시라는 형태가 인간적인 삶을 살기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한 말에 공감한다.

세월이 지날수록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사람의 본성에 맞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여태껏 일을 핑계로 서울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꽤 오랫동안 서울 한복판에서 살았다. 늘 빡빡한 주거 환경에 불만스러워하며 시골생활을 동경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2년 전 북한산 아래 동네로 이사했다.

북한산 기슭이 산책로가 되었다. 종종 한 시간여 산기슭을 오르내리며 나무들, 들꽃들과 인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들을 흥얼거린다.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시간이다. 어제 아침에도 산에 올랐다. 그런데 너무 흙이 메말라 걸을 때마다 먼지가 풀풀 날렸다. 문득 ‘이렇게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데 저 나무들과 들풀들이 어떻게 시들지 않고 살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 주는 사람도 없는데, 저렇게 푸르게 살아 있는 것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뿌리를 새삼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 천마산을 갔을 때였다. 조금 올라가다 보니 꽤 큰 전나무들이 모여 있었는데, 울퉁불퉁 구불구불한 것들이 바닥에 엄청나게 많이 퍼져 있었다. ‘세상에, 이것이 저 나무들의 뿌리구나’ 하며 감탄했다. 뿌리의 발견! 삶의 통찰을 한 가지 더해준 발견이었다.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서 있기 위해 저렇게 어마어마한 뿌리를 뻗고 있다는 것이 묘한 감동을 주었다.

뿌리가 땅 속에 묻혀 있을 때는 무심히 지나치다가 저렇게 밖으로 드러난 것을 보고서야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 보이지 않는 게 더 힘 있고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뿌리는 아래로 내려가며 생명의 근원인 물을 찾는다.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말라버리면 뿌리는 더 깊이 아래로 아래로 더듬어 내려간다. 이제 생명의 근원에 가 닿기 위하여.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서 있는 나무들이 갑자기 구도자들처럼 보였다. 저 하나하나가 생명의 신비를 품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생명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것 같다. 그러면서 참 생명이신 예수님이 오버랩되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뿌리 없이는 살 수 없다. 뿌리는 아래로 아래로 힘 있게 뻗어 내려가며 위를 향해 자라가도록 든든히 받쳐준다. 사람을 포함해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뿌리에 의지한다.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는 생명수를 얻지 못하고 위를 향해 자랄 수도 없다. 이 가뭄에 저 나무들과 들풀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아래로 아래로 뿌리를 내리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푸르름이 새삼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느껴졌다.

박선이(해와나무출판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