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종로 (9) 불혹의 깨달음 “주님은 넋두리 기도도 들어주신다”

입력 2012-06-13 18:46


어느 덧 내 나이 불혹(不惑)이라고 하는 40줄에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수없이 다짐했다. ‘그래, 지금부터는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고 정말 제대로, 사람답게 살아보자.’

지금까지의 모든 잘못은 오로지 내게 있었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특히 아내에게는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나의 잘못을 덮어주려고 애쓰는 아내를 보면 거룩하고 존경스러운 마음과 함께 무서운 마음도 들었다. 아무리 예수 믿고 새 사람이 됐다 할지라도 아내도 사람인데, 얼마나 내가 밉고 원망스러웠겠는가. 하지만 아내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면서 그런 마음을 다스려 나갔다.

한데 나란 사람은 정말 구제불능인가. 잘못도 알고 있고, 가야 할 목적지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여전히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다리 너머의 목적지만 바라보고 망설였다. 솔직히 자신도 없었다. 지난 경험으로 볼 때 내 힘으로 거듭난 생활을 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면서 슬슬 스스로 위로하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아침에 딴 사람이 되면 그게 사람인가. 에라 모르겠다. 시간이 가면 철도 들고 믿음도 생기겠지. 아이고 하나님! 나 좀 살려주십시오.’

그렇게 생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나름대로 노력을 하다보니 내 자신이 변하는 것 같았다. 나도 나이지만 무엇보다 내 주변의 분위기가 바뀌어져 있었다. 처음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교회 출석에 힘을 쓰다 보니 이쪽 사람들, 그러니까 술 마시고 화투 치는 사람들과의 접촉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술 담배를 줄였다. 그와 함께 또 하나의 큰 변화가 있었다. 내가 기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내 기도는 격식을 갖추지 않고, 정리된 내용이지도 않았다. 그저 다급한 마음, 아쉬운 마음을 되는 대로 하나님께 알리는 식이었다.

“하나님, 제발 좀 봐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내 힘으로 아무것도 안 되는 것 잘 아시잖아요.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저쪽으로 가야 합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과거로 확 돌아가 버릴까요? 에이 그럴 순 없죠. 하나님, 제발 좀 도와주세요. 저도 이제 집사람과 자식들 앞에서 체통을 세워야겠습니다.…”

어떨 땐 계속 ‘제발’ 소리만 반복했다. 내가 생각해도 기도라기보다는 푸념이나 넋두리 같았다. 하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처럼 푸념이건 넋두리건 하나님이 들으시고 효험만 생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때 아내가 결사적으로 기도한다는 것도 알았다. 아내는 분명히 나를 용서했고, 그랬다고 선언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 가득 밀려드는 절망과 배신감을 다스리기 위해 기도에 매달리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나의 푸념조 기도가 아니라 공격적이면서 확신에 찬 기도였다.

그런 걸 생각하면 가끔 쓴웃음이 나왔다. 징그럽게도 못되고 뺀질대는 사내의 넋두리 기도와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아주머니의 앙팡진 기도를 동시에 혹은 교대로 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기분은 어떨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도 안 되는 의문과 달리 한 가지 믿음이 마음속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무슨 기도를 어떻게 하든 하나님께서 들으신 바가 되고, 기도는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랬다. 기도하는 사이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화투를 만지지 않게 됐다. 손발을 잘라도 끊을 수 없는 게 노름이라는데 나는 그걸 끊었다. 물론 사업상 고객이면서 친구들인 그들이 벌이는 판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같이 할 때도 있지만 노름판에 끼어들진 않았다. 나중엔 직접 하지 않더라도 거기서 노는 것 자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아내의 말에 노름판 주변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