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워터게이트 40주년’ 앞두고 관련자들 토론회, “현재도 돈과 무책임함이 정치권력 압도”
입력 2012-06-12 19:31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연임을 위한 대선 캠페인에 몰두하던 1972년 6월 17일 오전 2시30분 워싱턴DC 워터게이트빌딩의 민주당전국위원회 사무실에서 5명의 침입자가 체포됐다.
이틀 뒤 워싱턴포스트의 초년병 기자였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침입자 중 한 명인 제임스 매코드가 중앙정보국(CIA) 직원이었으며, 현재는 백악관 내 대통령재선위원회와 관련이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시작이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 40주년을 일주일 앞둔 11일(현지시간) 사건 현장인 워터게이트빌딩에서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워싱턴포스트가 주최한 ‘워터게이트 40년’ 토론회. 당시의 두 주역 기자와 민주당 측 인사, 대통령 닉슨 편에 섰던 공화당 의원과 이 사건에 연루돼 수감됐던 백악관 보좌관까지 참석해 자신들이 보고 체험한 이 사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눴다. 정치인과 언론인, 의원 등 4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모습도 보였다.
당시 공화당 하원의원이면서 같은 당 대통령인 닉슨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윌리엄 코언 전 국방장관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지금도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면 돈과 권력, 비밀이 주요한 배경인데 현재 미국 정치에서 엄청난 돈과 무책임함이 정치권력을 압도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그가 선거자금 기부자가 수백만 달러를 후보자에게 제공한 뒤 어떤 혜택을 받는지 등에 대한 정보공개와 감시가 부실한 점을 들며 “이것은 정말 위험하다”고 강조하자 큰 박수가 쏟아졌다.
백악관 내 정보누설자를 색출하는 특별조사팀장을 맡았다 유죄 판결을 받았던 에질 크로그는 “중국과 국교 회복, 소련과의 군축협상 등을 추진하는 닉슨이 훌륭한 대통령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워싱턴포스트의 보도가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부터 큰 실망감과 환멸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우드워드와 번스타인 기자는 ‘딥 스로트(Deep Throat·핵심 정보 제보자)’로 밝혀진 마크 펠트 전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 없었더라도 사건을 파헤쳤을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펠트 부국장은 자신들이 맞는지 확신을 가지지 못하던 사안들에 대해 확인을 해줌으로써 취재에 큰 도움을 줬다”면서도 “파헤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또 디지털시대의 사건취재와 관련, 젊은 세대들은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을 요술램프처럼 여기지만 진실을 파헤치는 데 있어 취재원 등 인적 요소와 하나하나 확인하는 전통적 취재기법은 여전히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날의 주인공은 당시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이었던 벤 브래들리였다. 작고한 캐서린 그레이엄 전 워싱턴포스트 회장이 “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고 회고하는 비디오클립이 방영된 뒤 PBS방송 앵커 잭 레러가 “진정한 용기를 가진 그를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박한 평가”라며 “‘슈퍼 히어로’, ‘슈퍼 벤’으로 불러야 마땅하다”고 하자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한편 당시 사건 현장이었던 6층 옛 공화당전국위원회 사무실 자리에서는 워터게이트에 관계된 75명의 인물화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워싱턴=글·사진 배병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