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종로 (8) 기도로 무장한 아내의 남편 치유법 ‘허허실실’

입력 2012-06-12 18:30


“탑시다. 같이 갈 데가 있어요.”

“바쁜 사람 붙잡고 밑도 끝도 없이 시방 어딜 가자는 거여?”

“암말 말고 타기나 해요. 가보면 다 아니까.”

어느 날 아내가 공장 앞에 차를 세워놓고는 다짜고짜 차에 타라고 했다. 평소와 달리 아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할 수 없이 차에 타자 아내는 말없이 차를 몰았다. 그런데 설마 하는 사이에 차는 내가 우려하던 그 길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한 젊은 여자와 외도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나를 대동하고서 그 현장을 급습하고 있었다. 아내는 침착하게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행히 그 여자는 집에 없었다. 아내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가끔씩 내가 와서 머물고 가던 그 방이었다. 기분이 영 말이 아니었다. 분통이 터지는가 하면 부끄럽고, 부끄러운가 하면 겁도 났다. 아내는 찬찬히 방 안을 훑어보면서 “모두 고급 가구들이네” 하는 말까지 했다.

나는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처지이기도 했지만, 섣불리 한 마디 했다가 아내로부터 벼락을 맞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진짜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외출했던 그 여자가 들어왔다. 내가 찾아온 것으로 알고 웃으면서 들어오던 그녀는 아내를 보고는 돌처럼 굳어지며 파랗게 질렸다. 세 사람이 모여서는 안 되는 곳에서 묘하게 맞닥뜨렸다. 나는 슬슬 눈치를 보며 아내의 다음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아가씨, 내가 누군지 잘 알지?” “…”

“내가 왜 여기 온지도 잘 알고…” “…”

“두 사람 오래 된 거 다 알고 있어. 하지만 이제 그만둘 때가 왔어. 아니라고 말 못하겠지. 나 여기서 미칠 수도 있고 숨이 넘어갈 수도 있어. 하지만 나도 참을 테니까 두 사람도 여기서 그만둬.”

아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 여자는 머리만 떨구고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이후에도 그 자리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그러고는 나는 아내에게 이끌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사건은 정리되지 않았다. 그 이후에 그 여자가 아내를 찾아가 사정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어떤 대가라도 치를 테니 나와 함께 살게 해달라고 아내에게 매달렸다. 그러다 마침내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됐다. 이번에는 셋이 아니라 여섯이었다. 나와 아내, 그리고 내 누님, 그 여자와 그녀의 이모에 언니까지 한 자리에 모였다. 아내는 그녀를 향해 다시 한 번 단호하게 깨끗이 헤어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울며불며 용서해 달라는 말과 함께 절대로 헤어질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한동안 실랑이가 이어지고는 결국 간통죄로 처벌해 달라는 말까지 나왔다. 내 누님도 무슨 마음에서인지 나와 그 여자를 간통죄로 감방에 집어넣자고 했다.

“나 고소 같은 건 안 해. 그런 거 안 할 테니 두 사람 지금부터 맘 놓고 같이 살아.” “…”

“그 대신 늙고 병들거나 이 여자가 괄시하거들랑 나와 새끼들 있는 집으로 돌아와. 아무 소리 않고 받아줄 테니까.” “…”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나 역시 아내가 그렇게 나오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내가 밖으로 나갔다. 나는 아내가 저러다 쓰러지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게 무슨 말인가. 나와 그 여자의 관계를 인정하겠다는 게 아닌가. 그리고 훗날 다시 돌아와도 받아주겠다는 말이 아닌가. 나는 그날부터 많은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는 젊은 여자와 멀리 가서 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걸로 나와 그 여자의 관계는 완전히 끝났다. 아내의 작전이 들어맞았다. 성령의 이끄심에 따른 아내의 말과 행동이 나를 완전히 제압한 것이다. 그 길로 나는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기 시작했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