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유적 장성확장 끼워맞추기, 中은 만리장성 길을 잃어버렸다”… 동북아재단, 긴급 전문가 토론회
입력 2012-06-12 18:19
“중국은 만리장성의 길을 잃어버렸다.”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정재정)이 12일 서울 미금동 재단 대회의실에서 개최한 ‘중국의 역대 장성(長城) 발표 관련 전문가 토론회’에서 나온 이구동성이다. 토론회는 중국 국가문물국이 2007년부터 진행한 고고학 조사 결과 역대 만리장성의 총 길이가 2만1196.18㎞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지난 5일 발표한 데 따른 긴급 학술회의 성격이다.
이는 기존 만리장성 길이의 배를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현존하는 중국 북부 모든 지역에 만리장성이 존재했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전문가들의 발제문을 통해 우리 학계의 입장을 들어본다.
이종수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중국의 동북지역 장성유적 조사현황’이라는 발제문에서 “요동지역에서 장성이 지나는 구간은 행정구역상 중부지역의 심양지구, 철령지구와 동부지역의 무순지구, 본계지구, 단둥지구”라고 전제한 뒤 “이 지역은 대부분 높은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고대에도 교통이 발달되지 않은 지역인데다 둔덕 혹은 구릉형태로 길게 연결된 장성 흔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다만 이 지역에서 봉수 유적만 확인되고 있는데 이런 봉수 유적 역시 대부분 무순지구에서 확인될 뿐, 본계와 단둥지구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처럼 요동지역에는 처음부터 장성이 설치돼 있지 않았음에도 중국은 미리 설정된 장성 노선에 자료를 끼워 맞추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으며 최근에는 장성의 동단을 청천강 유역까지 확대하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에 대응하려면 먼저 중국 발표 자료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함께 북한과의 협력연구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남의현 강원대 사학과 교수는 발제문 ‘만리장성 동쪽 기점, 산해관인가, 압록강인가’에서 “중국의 명대 강역 연구는 현재의 압록강과 두만강을 한반도의 경계로 삼고 당시 여진지역인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을 명나라가 지배한 강역 속에 포함시키는 것을 기본 목표로 삼고 있다”며 “이는 고대 한반도의 역사를 두만강과 압록강 이남으로 한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실질적으로 명대 압록강∼봉황성 사이의 요동팔참(遼東八站) 지역은 조선과 명의 영토에 편입되지 않은 양국의 군사적 완충지역이었다. 두만강은 여진과 조선 사이의 국경지대였지, 명과 조선의 국경선이 될 수 없다”며 “이것은 조선은 물론 한국과 관련된 북방사를 서술, 복원하는데 매우 중요하므로 한국적 관점에서 압록강과 두만강 그리고 만주 역사의 재인식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홍승현 숙명여대 사학과 교수는 ‘중국학계의 장성 연구동향 변화’라는 발제문에서 “중국학계에서는 1990년대 이후 장성을 연속된 벽이 아니라 요새나 초소와 같은 거점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생겨났다”며 “최근 연구는 봉수 같은 구조물도 장성의 구성요소로 받아들여 장성선과 일치시키고 있으며 요동지역에서 발견된 모든 유물을 동쪽으로 향하는 하나의 선 위에서 파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지만 전국시기나 진한대(代) 유물 발견지를 곧 장성의 수비를 위한 병졸의 주둔지로 일괄할 수 있는지, 혹 소규모 주둔지가 발견된다 해도 그것이 모두 장성선으로 파악될 수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문제는 이렇게 장성선이 연구자들에 따라 제각기 확정된다고 했을 때, 이것을 학계가 검증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라며 “기록의 복잡성과 장성 유지의 불완전성, 그리고 장성 흔적을 찾는 개별적인 현장 조사 등으로 중국의 장성은 길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