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배준호] ‘깜’이 안 되는 상위 1% 가려내야
입력 2012-06-12 22:34
유럽발 재정위기로 우리 경제에 적색등이 켜지려 하는데 억대 연봉자가 늘어나고 출국자의 카드 씀씀이는 헤프기만 하다. 잡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100대 기업의 남자 직원 연평균 급여는 가장 높은 H증권이 상위 1%(1억488만원)보다 10%가 많고 상위 10곳 중 6곳이 은행·보험·증권사이며, 경쟁력이 세계적 수준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9000만원 이하다. 이렇듯 국제경쟁력과 국민경제 기여도가 낮은 ‘깜이 아닌’ 기관 종사자의 상당수가 1%에 포함되어 있다.
지난 4월 2006년의 국세청 자료를 이용한 조세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연소득 1억원 이상의 상위 1%가 국민소득의 16.6%를 벌어 소득세의 43.9%를 냈다. 분석대상 가구가 적고 총소득이 아니라서 ‘정확하지 않지만’이란 조건이 붙었지만 1억원 이상자는 2007년(1.2%), 2010년(1.6%)과 같이 늘고 있다.
경쟁력 약한 직종이 고소득
사실 이 같은 분석 작업은 본래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의 몫이다. 이들 정보는 당국이 정책의 수립과 추진 과정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고 민주사회에서는 국민 다수가 알아야 할 정보이기 때문이다. 두 기관은 못마땅해하기보다 자신들을 대신하여 작업한 조세연구원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IT 기술수준이 높고 주민번호로 개인별 재산과 소득자료가 체계화되어 있어 적은 비용으로 이들 작업을 행할 수 있다.
국내의 1%는 미국보다 덜 벌지만 세금을 더 내 그나마 낫다. 그래도 문제라고 판단하면 세부담을 늘리면 된다. 소득불균형은 버는 단계보다 세금과 사회보험료 등을 납부한 후가 더 문제다. 우리는 소득세 등 직접세와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의 사회보험료 부담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보다 낮아 소득재분배가 약한 편이다.
1%는 어떤 이들일까. 국민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안겨주는 연예인, 스포츠 스타, 작가, 크리에이터, 도산과 실패의 위험을 딛고 일자리를 만든 투자가, 경영인, 연구개발자,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이는 외환 딜러나 수출입기업의 임직원, 유산상속자 등일 것이다. 하지만 땅 짚고 헤엄치듯 관행과 구습의 보호막 덕분에 1%에 든 이들도 상당수다. 정부가 근래 민간의 소득분배에 관여하지 않는 틈을 타고 경쟁압력이 낮은 서비스업에서 턱없는 마진과 수수료, 높은 수임료와 진료비 등 공급자의 우월지위를 이용한 초과이윤 추구가 일상화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1%에의 집중 자체보다 그 내역이다. 창의력과 도전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건설적인 1%에 들지 못하는 자격 미달의 1%가 많다. 그리고 이들에 기생하거나 시세에 편승하여 억대 가까운 연봉을 받으면서 응분의 세부담을 하지 않는 2∼3% 그룹과 탈세로 5∼10% 권으로 분류되는 실질적인 1% 그룹도 적지 않다. 우리 주변에는 생산성이 낮은 관리·사무직으로 수억원대 연봉을 받는 금융기관, 공기업, 교육기관 종사자가 적지 않고 세금을 별로 안내면서 씀씀이가 큰 자영업자도 많다.
불평등과 갈등의 골 깊어져
“역할이 미미한 민간기업의 감사, 이사 등 임원급의 급여가 연 5억 원이든 10억 원이든 알 바 아니다”고 당국이 외면하는 사이에 불평등과 갈등의 골이 깊어가고 자본주의 경제의 종언이 가까워진다. 경제구조 변화와 납세자 저항으로 소득재분배 개선이 힘든 상황에서 당국은 임금 등 소득보상체계의 재구축 방향을 세우고 소득분배 단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좀 더 적극 나서야 한다.
배준호 한신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