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경아] 왜 왔냐고 묻지 않는 나라

입력 2012-06-12 18:16


2005년,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유학 길을 자청했다. 그때 영국이라는 먼 나라는 내 의지로 선택한 나라였지만, 동반비자를 받고 따라나선 두 딸은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는 ‘묻지마 유학’일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둘째 아이는 학교수업 첫날,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와 낯선 친구들에 대한 공포로 부들부들 떨며 토할 정도로 울어대 수업을 중단했었다. 어린 나이에 그 충격과 공포가 어떠했을지, 지금 생각해도 미안한 일이다.

그런데 부적응의 시간도 두 달이 고비였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설운 눈물을 쏟아 엄마 속을 시리게 하더니 이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아무렇지도 않게 적응하듯 영국이란 세계로 빠져들어 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1년쯤 지나자 내가 낀 자리가 아니면 자매끼리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기염을 토했다.

아이들의 무서운 적응력에 난 종종 두려움을 느꼈다. ‘이러다 저 아이들이 한국은 물론이고, 부모의 존재 자체도 잊게 되는 건 아닐까?’ 기우였지만 아이들에게서 영어가 자유롭지 않은 엄마를 조금은 창피하게 여기는 눈치, 자신이 영국 아이가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특이함에 주눅 들어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얻는 것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아이들을 잃게 된다면 나에게 무엇이 남는 걸까? 그때 나와 남편은 한국과 영국의 여덟 시간 시차를 넘으며 국제전화로 많은 고민의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정체성 혼란에 버거워하던 아이들이 어느 날인가부터 서서히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더 이상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게다가 뭔가 나에게도 믿을 구석 하나 있다는 자신감으로 한국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마음에 이런 안심이 찾아온 건 왜였을까? 그 이유를 나중에서야 큰 아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내가 한국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엄마, 나한테 한국이란 나라가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 “그래?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음… 영국은 친근한데 낯설고, 한국은 어색한데 그냥 내가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편해. 영국에선 아무리 친근해도 사람들이 늘 나한테 묻거든.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근데 한국에선 내가 아무리 서툴러도 아무도 안 물어봐.”

또 다른 경험은 공항을 빠져나오며 생기곤 했다. 영국 히드로 공항. 비행기에서 내려 밖을 나올 때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늘 우리에게 묻는다. “여기는 왜 왔나? 며칠이나 있을 예정인가? 뭘 하며 이 나라에서 지내나?” 그런데 한국 공항을 빠져나가는 길은 다르다. 공항의 출입국 직원들이 설령 미소도 없이 여권만 노려보아도 그들은 우리에게 묻지 않는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왜 왔냐고! 아무리 먼 길을 떠나왔어도,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왜 왔냐고 묻지 않고 받아줄 곳이 있다는 건 참 위로가 된다. 그곳이 조국이다.

오경아 가든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