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비밀주의 늪에 빠지면

입력 2012-06-12 18:11


중국어에 ‘허시베이펑(喝西北風)’이란 말이 있다. ‘서북풍을 들이 마신다’는 뜻이다. 먹거나 마실 것조차 없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이렇게 빗대는 경우가 많다. 중국 대륙 서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의 황량함이 느껴진다.

사실 산시(陝西), 간쑤(甘肅), 칭하이(靑海)성이나 신장위구르자치구 등 중국 서북 지역은 빈곤한 곳이다. 동부연안 지역에 비해 교통, 기후 등의 이유로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서부대개발 등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이에 비해 남동부 지역, 그중에서도 광둥(廣東)성은 중국 내 31개 성·시 가운데 가장 부유한 곳으로 꼽힌다. 성·시 단위 국내총생산(GDP)에서 지난해까지 23년 연속 최고(약 974조4700억원)를 기록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주창한 개혁·개방의 발상지이니 그럴 만도 하다.

지난주 한국 언론 베이징 특파원들과 함께 광둥성 정부 초청으로 광둥성 내 광저우(廣州), 둥관(東莞), 주하이(珠海) 등을 둘러봤다. 여수 엑스포에서 광둥성 주간(7월 5∼7일)도 예정돼 있는 만큼 광둥성의 발전상을 소개하고 싶다는 게 초청 취지였다. 올 가을 18차 당 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안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은 왕양(汪洋) 광둥성 당서기와 회견하는 일정도 포함돼 있어 기자들의 관심은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유례없이 17개 언론사 소속 19명의 한국 기자들이 광둥성으로 향했다.

광둥성 정부는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나름대로 준비를 하긴 한 듯했다. 하지만 정작 기자들이 관심을 갖는 부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우선 왕양 서기와의 회견은 예고도 없이 취소됐다. 광저우에 도착한 뒤 일정을 재확인했을 때에야 관계자가 이러한 사실을 알려줬다. 더욱이 그 이유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왕양이 외국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에 대해 물어보자 “하루 이틀 뒤 신문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왕양은 그 이틀 후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방문에 나섰다). 보안 유지 필요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회견 무산에 대해 사과는 못하더라도….” 일행들은 “이게 바로 중국식”이라며 어이없어했다.

주하이에서 헝친신구(橫琴新區) 개발 현장에 들렀을 때도 그랬다. 헝친신구란 주하이 남단에 있는 섬 헝친다오(橫琴島)를 제2의 홍콩과 마카오를 표방하며 대대적으로 개발하는 프로젝트. 컨벤션센터와 호텔은 물론 금융 서비스, 문화 오락단지가 들어서게 된다. 면적이 106㎢나 되는 이곳의 전체 투자비는 1000억 위안(약 18조5000억원). 이에 대해 국제적인 투자 유치에 문제가 없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모든 게 순조롭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식사 시간 옆자리에 앉은 다른 관계자에게 슬쩍 물었더니 “이곳에 투자한 외국 기업은 없다”고 했다. 이러한 상황은 컴퓨터·완구·신발·의류 등으로 유명한 둥관에서도 비슷했다. 코트라 광저우 무역관은 이곳에서 구인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회사가 적지 않다고 말하는데 현지 중국 측 관계자는 “그런 건 모른다”고만 했다.

이번에 광둥성이 산업구조 개편을 통한 활로 개척에 나서는 모습을 본 건 소득이었다. 여기에다 ‘중국식 비밀주의’를 다시 한번 확인한 건 또 다른 수확인 셈이다. 모든 걸 감추기에 급급한다면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지도적인 국가로 대접받을 수 있을까. 특히 정치적 비밀주의는 중국이 투명한 사회로 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