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환의 삶과 신앙] ‘성인아이’ 극복하기

입력 2012-06-11 18:10


4.5와 5가 있었다. 4.5는 5앞에만 서면 늘 작아지고 주눅이 드는 느낌이었다. 5보다 0.5 작은 자신을 늘 의식해야만 했기 때문. 5는 그런 4.5를 잘 조종할 줄 알았다. 자신이 필요한대로 심부름도 시키고 야단도 치고 그야말로 부하노릇을 제대로 시켰다. 4.5는 속으로는 궁시랑대면서도 아무런 불만도 표현할 수 없었다. 5의 모습이 너무 커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4.5가 어느 날 부턴가 5의 말을 듣지 않았다. 반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부름도 하지 않고 위협해도 코웃음을 쳤다. 확연하게 달라진 4.5의 변신에 궁금해진 5가 물었다. “너 왜 이러는데?” 4.5가 답했다. “나 점 뺐다!” 4.5가 점을 빼고 보니 45가 되어 5가 만만해 보였던 것이다.

가슴속에 점이 찍혀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45인 것을 잃어버리고 5라는 세상의 환경에 주눅이 들어 살게 되는 법이다. 마치 어린 시절 즐겨 듣던 동화 닭장속의 독수리처럼. 닭장 안에서 부화되고 그 환경에서 자란 독수리 새끼는 자신이 하늘을 힘차게 날 수 있는 독수리임을 잊고 독수리의 용맹스러움과 자유를 부러워만하며 닭장 안에 갇혀 닭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닭의 새끼로만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성서에 보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고 명시되어 있다. 45의 가능성으로, 독수리로 이 세상에 왔다는 뜻일게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4.5처럼 그리고 닭장속의 병아리처럼 살아간다. 자신이 그렇게 학습되고 또 자신이 학습된 모습 그대로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닭장 속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상담학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성인아이(adult child)’라고도 부른다. 성인이 되었어도 성인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미숙한 어린이처럼 관계나 일에 무책임하고 자신감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고 수치심에 입각한 눈치보기식 삶을 살아간다. 자기 가슴속의 ‘눈치꾼 어린아이’라는 큰 점을 빼지 못하고 남이 나를 무엇이라 하는가에 온 신경이 집중돼 평생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살아간다. 자신보다 커 보이는 상대에게는 그들의 비위 맞추기에 늘 피곤해 있으면서도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작아 보이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비위를 맞춰 달라고 보채기도 하며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쫒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늘 쫒기는 마음으로 세상과 자신을 정죄하고 심판하며 살아가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타율적 인간, 타율적 삶이라 말한다. 모든 기준을 자신의 내부가 아닌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잣대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성인이 된 사회에는 성인아이들이 차고 넘칠까. ‘미워하며 닮는다(hatred identification)’는 말처럼 성장과정에서 미운대상의 삶의 모습들을 내면화시켰기 때문이다. 나에게 위협적인 대상의 모습과 그 목소리들을 저 밖에 두면 늘 위협적이 되기에 내 가슴속에 숨겨왔으나 그 목소리와 위압감을 주던 이미지들이 가슴속 큰 점이 되어 자신을 지배하는 심리적 우상이 되고 만 것이다. ‘트로이 목마’처럼 피하고 싶고 숨기고 싶던 불편한 대상이 내 안에 들어와 나를 점령해 버리는 ‘내부의 조종자’가 되고 만 것이다. 성인아이들은 이 내부의 조종자에 의해 우상숭배의 삶을 살게 되고 자신의 삶과 관계의 일정부분을 이 우상의 제단앞에 제물로 바치며 노예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최근 대구에서 이번엔 고교생이 왕따 현실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 학생이 죽기 7시간 전 엘리베이터에 쪼그리고 않아 고민하며 흐느끼던 모습이 사진으로 실린 신문을 보며 참 가슴이 아팠다. 독수리 날개로 이 세상을 힘 있고 자유롭게 비상해야할 저 아이들을 누가 저렇게 힘없는 아이로 만들어 놓았을까? 저 아이의 날개를 접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성인아이 환경이 참으로 안타까우면서 왜 우리는 이런 상황들을 사후 약방문으로만 대처해야 하는지 분노가 끓어오르기까지 한다. 대선정국을 맞으며 그 많은 정치인들의 구호와 약속들에는 그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우리들의 닭장환경을 고쳐야 한다는 절박한 신호를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