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박강섭] 천은사의 오기

입력 2012-06-11 18:38


“천은사 관람 않고 성삼재휴게소 가는데 왜 문화재관람료를 내야 합니까?”

“요금소부터 (861번 지방도로) 8㎞가 천은사 땅이라 문화재관람료를 내야 합니다.”

“법원이 관람료 징수가 불법이라고 판결하지 않았나요?”

“항소했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입장료를 받습니다. (억울하면) 영수증 보관했다가 나중에 (대법원에서도 입장료 징수가 불법이라고 판결나면) 위자료 10만원 받아가세요.”

지난 주말 지리산 노고단을 찾은 등산객들이 전남 구례 천은사 입구에서 천은사의 문화재관람료 징수원과 격한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징수원은 항의하는 필자에게 도로가 ‘천은사 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나중에 위자료 10만원을 받으려면 영수증이나 잘 보관하라는 대답을 들려줬다.

행락철인데도 천은사 주차장에는 관광버스 1대와 승용차 10여대가 한가롭게 주차돼 있었다. 861번 지방도로에서 주차장을 거쳐 천은사 입구까지는 약 400m. 도로가 천은사보다 높아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지붕만 보였다. 그러나 노고단 입구인 성삼재휴게소에는 차량과 등산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모두 차창으로 천은사 지붕만 보고 문화재관람료를 낸 ‘억울한 사람’들이다.

조계종은 전국 67개 사찰에서 문화재관람료로 한 해 317억원(2005년 기준)을 징수했다고 밝히면서 전통문화 유지계승을 위해 관람료 징수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사찰의 문화재는 당연히 보존돼야 한다. 그래서 문화재청은 사찰이나 고궁의 문화재 보존과 보수를 위해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고 사찰들도 그 혜택을 받고 있다.

최근 광주지법 순천지원의 천은사 문화재관람료 징수 불법 판결을 의식한 듯 천은사는 홈페이지에서 영국의 웨스트민스터사원 관람료가 7300원인데 한국의 사찰은 1600원만 받는다고 밝히고, 관람료를 내는 것은 문화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실천’이라고 주장한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관람료를 웨스트민스터사원 수준으로 올려야 하지만 깎아주니 감사하라는 말이다.

문화재 보존과 보수를 위해 예산이 더 필요하다면 관람료를 올리면 될 일이다. 단, 관람자 부담의 보편적 원칙에 의해 사찰에 입장하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징수해야 한다. 문화재를 관람하지 않고 단순하게 사찰 경내를 통과하는 등산객에게 관람료를 징수하는 행위는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을 연상시킨다.

천은사의 문화재관람료 징수가 법정에 오른 것은 헌법에 보장된 통행의 자유를 무시한 채 지방자치단체에서 건설하고 관리하는 지방도로를 차단하고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기 때문이다. 법률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천은사의 문화재관람료 징수는 법원 판결을 떠나 즉시 중단돼야 한다. 또 징수한 문화재관람료와 문화재청으로부터 지원받는 문화재 보존 및 보수비 사용 내역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차제에 천은사가 정정당당하게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려면 요금소 위치를 천은사 주차장이나 사찰 입구로 옮겨야 한다. 하지만 천은사는 요금소 위치를 옮기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며 궤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찰 입구에 임시 부스를 설치하면 당장이라도 불필요한 마찰을 없앨 수 있다는 사실은 천은사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 입장료’ 수입에 미련이 남는다면 멋쩍겠지만 ‘문화재관람료’ 대신 ‘천은사 땅 통행료’로 바꾸기를 권한다. 그래야 지리산 등산객들도 덜 억울하고 위자료 청구 소송으로 사찰 재정이 거덜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