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샤라포바의 힘

입력 2012-06-11 18:37

‘시베리아의 여우’ 마리아 샤라포바가 지난 9일 테니스 여자 단식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했다. 2004년 17세 나이에 윔블던에서 우승한 후 2006년 US오픈, 2008년 호주오픈에 이어 25세에 마지막 메이저 타이틀인 프랑스오픈까지 품은 것이다. 이날 우승을 확정지은 뒤 무릎을 꿇고 잠시 기도한 뒤 두 팔을 번쩍 세우고 포효하더니 나중에는 감격에 겨워 껑충껑충 뛰기도 했다.

샤라포바는 188㎝의 훤칠한 키와 탐스런 금발, 곱상한 얼굴 덕에 인기가 많다. 프랑스오픈 우승컵을 든 채 에펠탑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 청순미가 뿜어난다. 2005년 한국에서 비너스 윌리엄스와 대결할 때 일방적인 응원을 받은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요즘도 경기 도중에 짧은 치맛자락을 슬쩍슬쩍 들어 올려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는다.

샤라포바의 또 다른 힘은 괴성이다. 상대 선수의 공을 받아칠 때 나는 소리는 95∼105데시벨(dB)을 오간다. 콘크리트를 뚫는 착암기가 90,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의 소음이 100∼130데시벨이니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벨라루스 선수 빅토리아 아자렌카의 고함이 다음으로 큰 데 비해 이번 프랑스오픈에서 맞붙은 사라 에라니의 함성은 샤라포바 앞에서 모기가 왱왱거리는 수준이었다.

괴성에 대해 샤라포바는 억지가 아니라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는데다 네 살 때부터 시작된 버릇이라 멈추기 힘들다고 한다.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샤라포바의 괴성은 단색이 아니라 비명, 쇳소리, 한숨소리, 신음소리 등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래선지 그의 괴성을 편집한 휴대전화 벨소리를 다운로드하는 사람이 많다.

샤라포바는 1인 기업이다. 공식 스폰서만 해도 나이키, 삼성, 에비앙 등 글로벌 기업 7곳이다. 지난해 2500만 달러를 벌어들여 여성 스포츠스타 가운데 7년 연속 최고 수입을 기록했다. 그녀가 입은 테니스복을 모은 컬렉션이 있을 정도로 스포츠 용품업계의 블루칩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을 통한 봉사활동도 활발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타이틀은 올림픽 금메달이다. 어깨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한 2008년 베이징 대신 올해 런던을 겨냥하고 있다. 연말에는 농구스타 사샤 부야치치와 웨딩마치를 올린다고 한다. 한 방송인이 괴성을 빗대 그날 풍경을 미리 걱정했다. “샤라포바가 신혼 첫날밤을 보낼 때 누가 그 옆방에 묵겠냐고!”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