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그리움이 동글동글, 앵두
입력 2012-06-11 18:37
앵두가 제철이다. 열매가 꽃보다 아름다운 앵두. 작고 동글동글한 수정 같은 열매들이 낭만적 정감을 선사한다. 앵두를 읊은 시는 의외로 많은데, 주로 단오에 천신(薦新)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임진왜란 때 피난지에서 앵두 한 바구니를 선물 받고 느꺼워한 상주의 선비 조정(趙靖)이 그러했고, 중국으로 사신 가서 복주(復州)에서 앵두를 맛보고는 제때에 귀국하지 못할까봐 애달파한 정몽주(鄭夢周)가 그랬다.
그러나 이제 천신의 풍속은 대개 사라지고, 이 시처럼 사랑 타령이 우리에게 친숙하다. 세월이 가져온 세태의 역전이다. 김려는 32세에 함경도 부령에서 4년간 유배생활을 하고 다시 진해로 유배를 갔는데, 어려운 시절 자신을 살갑게 대한 부령의 기생 연희를 추억하며 ‘사유악부’라는 장편 연작시를 썼다. 시인은 남쪽 바닷가에서 앵두꽃을 보고 북쪽 끝 귀양지에서 앵두로 허기진 배를 채우던 기억과 함께 그리운 연희가 더욱 그리워진 것이다.
이들이 따 먹은 앵두는 소 눈알만한 우안앵(牛眼櫻)으로, 영고탑(寧古塔)에서 들여온 종자인데 달고 맛있었다고 한다. 방울토마토만한 앵두를 연인의 입에 넣어주고 그것을 바라보며 햇살 속에 키득거리는 초여름의 진풍경이 간지럽다.
문득 고향집의 앵두나무가 떠오른다. 오디와 함께 이 무렵에 익는 앵두, 늙으신 부모님은 그 앵두를 쓸쓸히 맛보며 자식 얼굴을 떠올리고 있으려나? 사당에 시물(時物)을 천신하던 풍속은 이제 다 사라졌다 해도, 앵두와 함께 연인뿐만 아니라 부모를 그리는 마음도 남아 있으면 좋겠다. 앵두를 좋아하는 세종을 위해 궁궐 정원에 앵두를 심고 새를 쫓았다는 문종, 지금 고궁에도 앵두가 한창이겠다.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