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구제금융 지원] 구제금융 결정 배경·특징
입력 2012-06-10 19:18
IMF도 빠지고 조건도 후하게… ‘대마불사’ 배짱
9일(현지시간) 기습적으로 발표된 스페인 구제금융은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 이미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과 비교하면 조건이 지나칠 정도로 후하다. 유로존 4위 경제국이 쓰러질 경우 유로존 경계를 넘어 세계경제에 미칠 파괴력을 우려한 것으로, 스페인의 ‘대마불사’식 배짱이 통한 것이다.
◇역시 대마불사(Too big to fail)=“우리가 요청한 것은 금융지원이다. 구제금융과는 상관이 없다.”
루이스 데 귄데스 스페인 경제장관은 10일 구제금융 결정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는 구제금융을 받는 나라로서는 매우 드문 고자세 발언이다. 실제 이번 구제금융 지원에서는 긴축정책 조건이 없는 지원과 정부가 아닌 은행에 대한 직접 지원 등 스페인의 요청이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이는 스페인 경제가 차지하는 위상이 다른 구제금융 국가들과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스페인 경제 규모는 세계 12위다. 그리스(32위) 포르투갈(37위) 아일랜드(42위) 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덩치가 커서 스페인이 쓰러질 경우 악영향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IMF는 빠지고 조건도 가벼워=국제통화기금(IMF)의 역할은 이번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서 최대 쟁점의 하나였다. 지금까지 구제금융에는 유럽연합(EU)과 함께 IMF가 참여했지만 스페인은 IMF의 역할 최소화를 주장해왔다. IMF가 구제금융 조건으로 긴축정책 등에 압력을 넣을 것으로 우려한 때문이다. 격론 끝에 IMF는 스페인 은행 개혁에 대한 감시자 역할만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지원 금액도 정부가 아닌 은행에 직접 투입된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성명에서 “금융지원은 은행 자본 재확충을 위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또는 유로안정화기구(ESM)에서 제공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용 방식에 융통성이 있고 집행이 즉각적인 ESM에서 지원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독일 관리를 인용해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여기서 나오는 돈은 스페인이 은행 구조조정을 위해 운영 중인 ‘질서 있는 은행구조조정펀드(FROB)’에 직접 투입된다.
지원 대상을 은행으로 한정한 것은 이번 스페인 불안이 악성 대출에 따른 은행 위기라는 진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은 전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스페인 위기 진화에 1000억 유로로 충분한지도 논란거리다. 스페인 정부는 구체적인 신청 금액은 확정하지 않았다. 이달 21일 외부 기관의 은행 실사 결과가 나온 뒤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스페인과 유로그룹, IMF 등은 이 정도면 위기 진화에 충분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하지만 영국 일간 가디언은 “애초 전망보다 규모가 큰 구제금융이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스페인에서 자본유출이 계속되는 상황을 감안할 때 충분한 규모가 아니라고 평가한다”면서 “1000억 유로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작은 조치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AP통신은 유럽이 재정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유럽 전역에 걸쳐 경제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는 방법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