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동환] 五餠과 二魚의 기적

입력 2012-06-10 19:07


몇 년 만에 일본 출장을 다녀왔다. 화려했던 도쿄의 야경은 동북지방의 쓰나미와 원전사태 이후 끝 모를 절전 모드로 들어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재정위기가 금융위기로 번져가고 있는 유럽경제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미국, 중국 역시 일본이 걸어왔던 쇠락의 길을 따라 ‘퍼펙트 스톰’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라는 전망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경제대국이 동시다발적으로 곤경에 처하기는 1929년 세계대공황 이후 처음이라는 경제비관론이 그리 호들갑으로만 들리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경제의 역사는 자급자족에서 출발해 물물교환을 거쳐 화폐경제 시대를 맞이하는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해 왔다. 그리고 지금 인류는 화폐경제 시대의 끄트머리에서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희극으로, 한번은 비극으로”라는 마르크스의 명언(프랑스혁명사의 한 구절)을 곱씹고 있다.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시야를 조금 넓혀 인류가 걸어 왔던 시행착오의 역사를 잠시 돌이켜 보자.

자급자족 시대 바닷가에 살던 사람은 물고기 두 마리로, 뭍에 살던 사람은 떡 다섯 개로 하루를 지냈다. 그러다 육상교통의 발달로 물물교환 시대가 열리자 이들은 자기가 먹을 물고기와 떡 외에 여분을 생산해 교환에 나섰다. 일이 늘어나 힘이 들었지만 식단이 풍부해져 좋았다.

해상교통의 발달은 삶의 질과 양을 혁명적으로 제고시켰다. 교환 대상 품목과 지역이 확대되자 사람의 노동만으로는 늘어나는 주문을 제때에 맞출 수 없어 기계, 장비와 같은 자본이 투입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노동은 고통으로 변질됐고 생산성은 한계에 다다랐다.

기술의 발전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이런 걱정을 덜어주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토지와 어장은 자본에 의해 독점, 남획되고(이를 경제학에서는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한다) 노동은 자본에 의해 대체되면서 터전을 잃어갔다. 돈으로 행복을 사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대공황이 찾아왔다.

케인즈학파에 따르면 대공황은 기술 발전으로 생산력이 확대되었지만 저임금과 실업으로 중산층이 무너져 유효수요가 부족했던 데 근본 원인이 있었다. 그 외에도 금융과 산업이 결합하고 은행과 증권이 겸업화하는 과정에서 중상주의적 화폐자본이 투기자금화되어 부동산과 주식시장을 유린하고 기업의 신뢰를 무너뜨린 것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한편 통화론자는 투기세력 근절 등을 위한 금융 긴축으로 경기가 침체하게 된 것을 대공황의 원인으로 보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최근 유럽 사태의 배경이 80년 전 대공황의 그것과 다를 바 없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역사의 비극적 반복인가?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어느 나라를 가도 99% 시민들은 “산 입에 거미줄 칠 일이야 있겠나, 세 끼 먹는 것 한 끼나 두 끼로 줄이면 되지”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는 자급자족 시대로 돌아가 소소한 노동의 즐거움을 누리며 안분지족하자는 체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사는 어떻게 하면 진정한 희극으로 반복될 수 있을 것인가? 공정하고 안정적인 경제를 위해 규제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 같다. 그보다는 99%의 절약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도록 1%가 충분한 기부와 건전한 소비를 통해 경제를 회복하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앞장서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오죽했으면 “지금 울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역설이 나왔을까. 지금 내 주변에서 울고 있는 사람에게 손을 건네는 일이야말로 오병이어의 교환으로 시작된 비극의 역사를 희극의 역사로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