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종로 (6) ‘金벽돌’ 낳는 사업 호황… 그러나 술·도박병이
입력 2012-06-10 18:20
벽돌공장을 운영하는 아내는 교회 일에 열성이면서도 기가 차게 사업을 잘 했다. 벽돌이나 블록을 찍으면 찍는 대로 팔아치웠다. 인근의 다른 벽돌공장에서도 그런가 하면 그게 아니었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데도 아내 공장의 벽돌만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아마 하나님께서 그때부터 아내를 축복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게 1년 정도 일을 하고 나니 아내 손에는 200만원의 현금이 쥐어졌다. 그러자 내가 현장 책임자로 일하던 벽돌공장의 사장인 둘째 형도 나에게 200만원을 주었다. 여자가 그만큼 벌었는데, 남자인 나도 그 정도는 벌어줬을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400만원을 쥐고 아내는 당돌한 아이디어를 냈다. 형의 벽돌공장을 인수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 등으로 벽돌과 블록 수요가 점점 많아질 때인지라 공장을 내줄 리 만무했다. 아내는 단념하지 않고 계속 둘째 형을 졸라 결국 공장을 넘겨받았다. 당시 둘째 형은 벽돌공장 말고 건축사업으로도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었던 터였다.
1978년 나와 아내는 율촌기업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본격적으로 벽돌공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비로소 날개를 달았다. 잠재돼 있던 내 능력, 다시 말해 사업수완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사람 사귀고 다루는 일에 천부적인 능력을 갖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주위로부터 사람을 끌어들이는 뭔가가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 스스로도 그런 쪽으로는 누구보다도 잘 할 자신이 있었다.
역시 사업은 번창했다. 거래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보니 율촌기업은 다른 어디보다도 잘 됐다. 그러면서 나의 못된 습성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술과 도박을 또 다시 시작한 것이다. 같은 술과 도박을 즐겨도 예전과 달랐다. 수시로 아가씨들이 있는 값비싼 술집을 드나들었고, 도박판도 소위 꾼들과 어울리는 큰 판을 다녔다. 거기다 이제는 다른 여자를 사귀는 외도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간 나는 그야말로 천방지축이었다.
가끔 나 스스로 너무한다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까짓것 인생이 별건가. 메뚜기도 한 철인데’라며 자신을 위로하고는 용감무쌍하게 나쁜 짓을 저질렀다.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붙어 다닌 불행과 불운을 보상하고픈 심리의 발동이었는지 몰랐다. 특히 소아마비 장애인이 되고 골수염으로 계속 고통 받는 처지를 스스로 달래는 위안이었는지도 몰랐다. 어쨌건 나는 궤도를 너무 벗어났고, 그런 점에서 아무리 비난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었다. 아내가 그런 나의 행적을 눈치 채지 못할 리 없건만 무던하게 대해줬다. 가끔 금고에서 많은 돈이 없어진 걸 알고 야단을 치긴 했지만 지나칠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아는 아내는 진짜 성질을 부렸다 하면 대단했는데, 그런 면도 없어졌다. 더러 심하게 나올 듯하다 스스로 제지하는 모습도 보였다.
“당신, 나도 애들도 다 교회 나가는 것 두 눈으로 잘 보지? 당신도 각시와 새끼들 따라 교회 나가자고. 그럼 당신 잘못한 거 다 용서할 거니까.”
맞았다. 아내의 관용과 여유는 신앙에 있었다. 그러면서 아내의 속마음이 대충 읽혔다. ‘사람 힘으로는 당신 버릇 못 고친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야 당신이라는 사람 못된 짓 끊고 인간 대접 받고 살 수 있다.’
그래도 술과 도박에 여자까지 뒤엉킨 ‘서종로의 전성시대’는 위험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반면에 아내의 여유로운 대응도 안정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 누가 이기자 해보자고. 기도하는 내가 이기나, 못된 짓 하는 당신이 이기나. 언젠가 예배당에 나와서 눈물콧물 흘리는 날이 올 거니까.’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