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용우] 유럽의 위기와 민족주의 부활

입력 2012-06-10 18:26


유럽연합(EU)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60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하나 된 유럽이라는 건물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균열은 경제 위기에서 시작됐다. 아일랜드, 그리스, 포르투갈 등 유럽연합의 ‘주변부’를 시작으로 지금은 역내 경제 규모 4위인 스페인을 뒤흔들고 있는 경제 위기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EU의 위기는 유로화 통용 지역인 유로존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 곧 있을 그리스 총선이 유로존의 미래를 점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지만 벌써부터 유로존 붕괴를 둘러싼 시나리오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가장 걱정스러운 시나리오는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고 경제 위기에 시달리는 여러 나라들이 뒤를 잇는 도미노 현상이다.

경제위기에 가려진 균열 조짐

그러나 급속한 유로존 붕괴가 세계경제에 가할 엄청난 파괴력 때문에 오히려 어떻게든 수습책이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도 많다. 유로존의 위기가 잦아들면 EU도 큰 고비를 넘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경제 위기에 가려진 다른 균열의 조짐들이 문제다. EU가 민족주의의 맹렬한 득세로 갈갈이 찢긴 비극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20세기 절반의 기간 동안 이 지역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그 명백한 증거다. 두 전쟁의 포화 속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수를 헤아리는 것도 힘들 정도다.

EU는 민족국가와 민족주의를 넘어선 공동체를 수립하려는 역사상 최초의 대대적인 실험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실험에 촉각을 곤두세운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때 크고 작은 민족국가들로 나뉘어 싸움을 일삼던 곳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번영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탄생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EU야말로 인류의 미래가 아닌가?

하지만 지금 EU의 시계는 거꾸로 도는 듯하다. 증오의 민족주의가 곳곳에서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민족주의의 부활은 이주민을 그 먹이로 삼고 있다. 피부색과 문화와 종교를 달리하는 이주민들이 민족국가를 와해시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널리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주민에 대한 공포와 증오

다문화주의가 실패했다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2010년 10월 선언은 민족주의의 공공연한 부활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다. 독일 민족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이주민들의 문화와 종교를 인정할 수 없음을 공표한 것이다.

메르켈 총리의 선창에 곧바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화답했고 더 많은 EU 소속 국가 지도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이주민에 대한 공포와 증오가 순혈적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이주민에 대한 적대감을 활용한 극단적 민족주의 세력들이 EU 회원국에서 약진을 거듭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급기야 일부에서는 극단적 민족주의가 EU의 토대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2011년 5월 덴마크가 국경 통제를 재개하겠다고 선언한 일은 부활하는 민족주의가 EU를 어떻게 위협하는지 잘 보여준다.

독일과 스웨덴으로부터 이주민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덴마크의 행위는 EU 22개 회원국 사이의 국경 통제를 철폐한 셍겐 조약을 위반한 것이다. 이 조약으로 만들어진 ‘셍겐 스페이스’는 유로존 못지않게 유럽 통합을 상징한다.

이주민의 문화와 종교를 관용할 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변화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마련할 때 EU는 희망일 수 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들에 대한 적개심과 공포를 던져버리지 못할 경우 아무리 경제 위기가 잠잠해진다 해도 EU의 미래는 험난할 것이 분명하다.

김용우 호모미그란스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