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혜련] 방송사엔 어른도 없나?
입력 2012-06-10 18:25
“원 참, 연예인들이 주접을 떠는지, 쑥스럽고 부끄러운지는 내가 판단한다.” 어느 날 한 TV 예능프로 자막을 보고 든 생각이다. 출연 연예인 옆에 “쑥쓰… 주접들 떨고 있네 부끄…”라고 써 있는 말 주머니를 보고 불편해져서다. 아예 시청자들의 감정 배설도 도맡겠다는 심산인가. 채널을 돌리니 한 방송사는 ‘프로즌 플래니트’를 방영하겠단다. 이건 또 뭔가. ‘극지(極地)’나 ‘얼어붙은 지구’ 이렇게 하면 안 되나. 착잡하다.
누가 TV를 ‘바보상자’라 했나. 요즘 TV를 보면 그 표현이 나날이 정확해진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래도 바보가 되고 안 되고는 시청자 하기 나름이지 했다. 그런데 TV가 시청자를 바보로 만들려고 팔을 걷어붙인 것 같다. 대세는 ‘예능프로’다. 새로 생긴 종편채널까지 가세해 정신이 없다. 많게는 수십 명이 한꺼번에 출연해 저급한 ‘농담 따먹기’를 경쟁적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정신없이 프로를 진행하면서 서비스 차원인지 출연자 발언과 행동, 그에 대한 느낌을 자막 처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본 작가가 시청자의 느낌을 추정해 일일이 토를 달아주는 형식이다. 어떤 때는 “당신네는 이렇게 느껴야 한다”고 감정 지도까지 하는 형국이니 TV 앞에서 로봇이 된 느낌이다.
그에 더해 방송은 요즘 바른말, 고운말, 우리말 사용에도 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자막의 내용은 물론이고 틀린 맞춤법, 천박한 유행어, 맞지 않는 외래어도 남발한다. 또 프로 내용과 무관하게 얼굴 타령에 정신을 못 차린다.
부정선거 문제로 이전투구 중인 여성 정치인들을 ‘얼짱’이라고 수도 없이 노래를 부른다. 마라톤 중인 선수가 ‘꽃미남’인 게 무슨 상관인가. 퀴즈 프로에서도 어린 남학생들이 여성 아나운서에게 희롱조 애정고백을 하게 만드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선정성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참다못해 채널을 돌리면서 과연 저 방송사에 ‘어른’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 프로가 전국에 방영될 때까지 여러 단계의 내부 심의와 최종 편집을 거치는데 어느 누구도 바른 말을 하지 않았단 말인가. 거창하고 고상한 방송의 존재 이유는 제쳐두고라도 적어도 공익에 반하거나, 바른 언어생활을 망치는 죄를 피하기 위해 최소한의 고민은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방송이 국민의 의식과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민도(民度)와 국민성까지 규정짓게 된다는 생각에 이르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당신이 직접 제작해 봐라. 시청률 따지지 않고 초연할 수 있나!”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들은 오히려 시청자 이탈을 초래하는 게 아닐까. 방송의 기본 역할조차 헐값에 던져버리고 나중에 무엇으로 제 존재 이유를 찾겠다는 것인지.
좋은 프로에 열심히 박수치고 댓글 달아주면 되는 건가. 싫든 좋든 ‘바보상자’의 동조자가 돼 가는 시청자들이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지, 그들이 제발 한 수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고혜련 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