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판결’ 뒤집은 헌재… 3심제 재판구조 흔드나

입력 2012-06-08 18:43


최고 사법기관 해묵은 갈등 재연 조짐

“법원이 효력을 상실한 법 조항을 유효한 것처럼 해석한 것은 국회의 입법권과 조세법률주의에 반한다. 그것도 대법원이 그랬다.”

삼권분립의 원칙상 대법원이 망신을 살 일을 한 것처럼 얼핏 비쳐진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9월 재판관들의 퇴임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 사법체계의 근간을 건드리는 사건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헌재는 7일 GS칼텍스 등이 국세청을 상대로 낸 법원 소송에서 패소하자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대법원 판결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대법원이 (법 개정으로 사라진)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를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해석한 것은 권력분립 및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이는 대법원이 2008년 10월 “부칙을 계속 적용하는 규정이 없더라도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실효(失效)되지 않는다”며 GS칼텍스의 패소 취지로 판단한 것과 배치된다. GS칼텍스는 2009년 5월 서울고법에서 패소가 확정되자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의 이번 결정이 3심제 재판 구조에서 4심을 요구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헌법재판소법 68조1항은 법원의 재판 결과에 대한 적법 여부를 헌재가 판단하는 ‘재판소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헌재도 법률 조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한 것이지 재판소원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헌재 결정을 근거로 해당기업들이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서울고법과 대법원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 법원 관계자는 8일 “단순 위헌의 경우 기속력을 인정하지만 이번처럼 한정위헌은 변형된 결정이기 때문에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이 경우 해당기업들은 헌재에 진짜 ‘재판소원’을 다시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헌재는 1997년 “(한정) 위헌으로 결정한 법률을 법원이 다시 적용한다면 기본권 침해이고, 이 경우에 한해 재판소원을 금지한 68조1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를 근거로 헌재가 법원의 판결을 파기할 길이 열려 있다.

결국 국세청은 법원의 과세정당 판결문을, GS칼텍스는 헌재의 과세부당 결정문을 쥐게 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사건에 걸린 세액이 1000억원에 이르고 비슷한 이유로 수많은 기업에 부과된 세금이 2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우려된다.

법조계에서는 헌재의 결정이 88년 창설 당시 대법원의 반대로 도입이 좌절되면서 양 기관의 뜨거운 감자로 인식됐던 재판소원의 입법을 노린 포석으로 보고 있다. 향후 대법원의 반격이 주목되는 이유다.

정재호 기자 j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