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냄새 짙게 풍기는 작품 등 유치환의 시 8편·산문 7편 발굴

입력 2012-06-07 19:27


“나의 창밖에/ 한 포기 자그마한 푸른 나무가 자라나니/ 이는 신기로운 꽃도 맺지 못하고/ 황홀한 향치(香致)도 머금지 못하였으되/ 어린 손길은 건강한 잎새와/ 눈동자와 같은 맑은 마음을 가졌거늘/ 나는 이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말을 이야기하고/ 가만히 이의 생장을 지키노라”(‘마음의 나무’ 일부)

문예지 ‘연인’(발행인 신현운) 2012년 여름호는 1934년 4월 발간된 잡지 ‘중앙’에 실린 ‘마음의 나무’를 비롯해 청마 유치환(1908∼1967·사진)의 미발굴 시 8편과 산문 7편을 발굴 공개했다. 이들 작품은 ‘자유신문’ 등에 기고한 시로, 유치환의 초창기인 1933년부터 60년대까지 발표한 ‘고양이’ ‘새해에 드리는 시’ ‘서울’ ‘슬퍼도 주지 말라’ ‘산처럼’ ‘춘효’ ‘비슬산 기슭’과 산문 ‘다시 생각해보자 어머니날’ 등이다.

특히 시 ‘슬퍼도 주지 말라’는 “이것이 ‘유치환이’라 부르지 말라/ 유치환이는 이미/ 허구한 세월 밤중마다/ 쥐어짜는 그리움으로/ 적막히 굴러가는 밤차 소리 타고 그에게로 가버렸니라”라는 3연에서 보듯 시적 자아의 자성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등 인간적인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어 주목된다.

‘서울에 부치는 글’ ‘취송군도 푸르러’ ‘한산도를 앞에 두고’ 등 산문 7편도 신문과 잡지에 발표된 것으로 칼럼적 성격이 강한 에세이다. “무엇보다도 북구의 산들이 저러려니 하고 실없이 혼자 생각해 보는 동북쪽 하늘 높이 고고히 솟아 있는 산줄기며 태평로 부근의 여유작작한 길과 양편에 늘어선 가위를 넣지 않은 우거질 대로 우거진 플라타너스! 그리고 거리 한 복판에 언제라도 가서 창연한 고색과 한적을 행락할 수 있는 고궁들을 가졌음은 얼마나 좋은가”(‘서울에 부치는 글’에서)

서지학자 김종욱씨가 발굴 공개한 이들 시편과 산문에 대해 문학평론가 유한근씨는 “이들 산문에서 시인의 고향에 대한 회억과 아름다움, 수도 서울의 중요성 등 에코페미니즘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문예지 ‘연인’은 1920년 창간된 동인지 ‘폐허’의 이면사를 알 수 있는 염상섭, 박종화, 김동인, 김팔봉 등의 글도 발굴 소개했다. “내가 폐허지에 처녀작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한 것은 그 이듬해(1921년) 봄 일이거니와 우리 문단에 자연주의 문학이 수립된 것도 결코 의식적으로 조작한 것도 아니요, 수입한 것도 아닌 것이다. (중략) 당시의 일본 문학이 자연주의의 난숙기이었던 것도 사실이지마는 작품이 모방으로 되는 것이 아닌 이상 수입이나 작위로서 한 경향이 형성되고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염상섭의 ‘나와 폐허 시대’-‘신천지’ 1954년 2월호)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