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피임약 처방전 없이 판매 논란] 고용량 호르몬 제제… 오·남용 땐 여성건강에 치명적
입력 2012-06-07 18:57
피임약 재분류… 안전성 논란 가열
성폭행 피해를 입은 여성에게 흔히 응급피임약으로 불리는 사후피임약 처방은 꼭 필요하다. 원치 않는 임신을 막는 긴급상황 약제이기 때문이다. 콘돔이 손상되거나 사전 피임을 제때 하지 못한 경우도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7일 의약품재분류안을 통해 526개 품목을 재분류했다. 이 중 전문의약품이었던 사후피임약을 빠르면 내년 초부터 약국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변경했다. 식약청은 “국민이 안전하고 합리적으로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분리했으며 약리기전, 효능·효과, 용법·용량, 부작용, 외국 사례 등을 종합해 15단계의 분류 세부 기준에 따라 객관적으로 내린 결론”이라고 밝혔다. 대표적 사후피임약인 노레보정의 경우 부작용 발현 양상 등이 없고, 의약 선진국 8개국 중 5개국에서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됐다고 설명했다. 장기복용 약품이 아니고 1회 복용이어서 피임약에서 문제가 되는 혈전증 등 심각한 부작용 우려가 거의 없고, 배란억제제이므로 낙태약도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약효를 보이는 쎄스콘원앤원정, 엠에스필정, 레보노민정, 엔티핌정, 세이프원정, 레보니아정, 레보이나원정, 포스티노-1정, 애프터원정, 엘라원정 등이 이번에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된 레보노르게스트렐 성분이다. 하지만 식약청은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이들 제품을 일단 성분만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했다.
식약청 안에 대해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즉각 “여성의 생식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사전피임 소홀로 무책임한 성문화만 확산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미국과 유럽은 정상적 피임률이 15∼40%에 이르는 반면 우리는 2.5%에 불과하고 사후피임약 복용률은 그 2배가 넘는 5.6%라는 것이다.
학회는 이와 함께 사후피임약은 성폭행 등 피치 못할 경우 먹는 응급제여서 고용량 호르몬이 일반 피임약에 비해 10∼15배 많다는 통계치를 제시했다. 월경주기에 반복해서 사용할 경우 출혈, 오심, 복통 등 부작용 발현 빈도가 높고 피임실패율도 10∼40%에 이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용약으로의 전환은 국민건강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의 모임도 “사전피임과 계획임신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지원보다 실패율이 가장 높은 피임법인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은 여성의 낙태 위험성을 더 높일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개신교와 가톨릭교 등도 생명윤리를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대한약사회는 “사후피임약의 주요 부작용은 48시간 내에 사라지고 심혈관계 부작용도 1회 복용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며 “일반약 전환이 타당하다”고 맞섰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