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수호] 직업으로서의 국회의원

입력 2012-06-07 18:45


지금 국회 앞을 지나면 의사당 열주 사이에 커다란 현수막을 볼 수 있다. ‘경축 19대 국회 개원’. 새로운 선량 300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내용이다. 7선의 재벌 정몽준 의원부터 31세 앳된 김재연 의원까지 상기된 표정으로 붉은 색 카펫이 깔린 계단을 오르내린다. 지역구 출신이든, 비례대표든 이들의 보무는 당당하다. 선거철 지하철 입구에서 굽실거리던 아저씨, 아줌마가 아니다. 유권자라고 대충 대했다가는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기는 거야?”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이들에게는 수많은 특권이 주어진다. 다 열거하면 200가지에 이르고, 굵직굵직한 것만 정리하면 24개쯤 된다. 그렇다고 모두 나쁘다고 시비 걸 생각은 없다.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이 남용되는 것이 문제점이긴 해도 애초에 나쁜 권력과 싸우려면 그 정도의 방탄조끼는 둘러야 한다. 이동 중에 일을 많이 하니까 운전기사 딸린 세단을 타도 좋다. 건강을 챙겨야 하는데 사우나나 헬스 좀 공짜로 하면 어떤가. 1년에 두 번쯤 해외에 나가서 견문을 넓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 말라”

다만 28년차 직업인으로서 간절히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일의 신성성’이다. 한마디로 일을 우습게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직업의식의 첫 번째 조건은 국민 세금에 대한 태도다. 지난 5월 말에 종합소득세를 내 본 사람은 세금이 무서워 가슴을 쓸어내린다. 혼신의 힘으로 번 돈이 세금으로 뭉툭 잘려나가는 경험은 제 몸의 살점을 떼어내는 것처럼 아프다. 액수의 다과를 넘어 세금은 납세자의 땀과 피가 모인 것이다. 혈세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난 것이다. 국가라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세제도가 필수적이지만 국회 개원도 못하고 싸움질만 하는 의원들을 뒷바라지한다는 것은 억울하다.

다음으로는 ‘밥의 거룩함’이다. 의원들에게 파격적 예우를 하는 것은 국가지대사를 다루기 때문이다. 의원들에게 매년 지급되는 1억5000만원은 28년차 직장인도 받을 수 없는 연봉이다. 의원들은 여기에다 4급 보좌관 2명과 5급 비서관 2명, 6·7·9급 비서 1명씩, 인턴 2명까지 모두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45평 사무실에 9명 직원을 붙여주면 자그만 기업 하나 차리는 것과 같다. 이러고도 일을 안 하면 밥을 먹지 말아야 한다. 알잖는가, 민간에서는 철저히 ‘노 워크, 노 페이’라는 사실.

염치 있다면 특권 내려놓아야

다음으로는 ‘인간의 염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전직 국회의원이 65세만 되면 자동적으로 매월 120만원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뻔뻔한 짓이다. 지난해 발의 때도 비난여론이 빗발쳤으나 눈 딱 감고 통과시킨 그들이었다. 120만원이 뭐 별거냐고? 국민연금이 생길 때부터 28년간 다달이 회사와 반반씩 부은 직장인도 61세가 되야 120만원쯤 나온다고 한다. 그것도 앞으로 얼마나 줄어들지, 수령 연령이 얼마나 늦춰질 지 조마조마하다. 군인이나 공무원, 교사도 기본적으로 낸 만큼 받는다. 국민들의 사정이 이럴진대 자기들은 한 푼 붓지 않고 연금을 받겠다는 것은 도둑 심보나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의 탐욕은 정평이 나 있고, 한번 권력의 맛을 본 민주당은 정권 탈환에만 눈이 벌개 있다. 이럴 때 진보정당이 의원들의 어깨에 덕지덕지 붙은 견장을 내려놓는데 앞장서면 얼마나 좋을까. 진보라는 것이 본래 기득권의 벽을 깨며 합리와 이성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이상한 외계인 행세를 하니 실망스럽다. 그러니 19대 국회도 4년 내내 국민들의 가슴에 상처를 내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펼쳐갈 것 같다. 유권자를 한강에 떠다니는 지푸라기처럼 하찮게 여기면서.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