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편지 교환
입력 2012-06-07 18:31
편지(便紙·片紙)는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가 많은 편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동의어가 18개나 실려 있다. 눈에 익은 서찰(書札) 서신(書信) 서한(書翰) 서간(書簡) 말고도 간독(簡牘) 간찰(簡札) 서독(書牘) 서소(書疏) 서장(書狀) 서척(書尺) 서함(書函) 성문(聲問) 신(信) 신서(信書) 이소(鯉素) 찰한(札翰) 척한(尺翰) 편저(片楮)처럼 낯선 단어도 많다.
편지 종류는 쓴 목적에 따라 안부·축하·감사·초대·위문·부탁·조문·연애편지 등으로 나뉜다. 최근에는 ‘BBK와 관련한 가짜 편지’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다. 아침편지로 유명해진 인사도 있다.
1960∼80년대 초·중·고교에 다닌 학생이라면 얼굴도 모르는 군인 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쓴 기억이 있을 게다. 편지 쓸 때는 약간 어색하고 귀찮았지만 사병으로 근무할 때는 위문편지, 그중에서도 여학생이 보내는 위문편지를 기대하곤 했다. 행정반에 근무하는 사병들은 글씨를 예쁘게 쓴 여학생 두세 명의 편지를 먼저 ‘찜’해 놓고 나머지를 내무반에 돌렸다.
요즘 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지만 아직도 편지를 애용하는 이들이 있다. 사랑하는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들이 대표적이다.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의 사이버참배 게시판에는 고인을 그리는 편지 같은 글이 2만개 가까이 올라 있다. 애끊는 마음을 담은 사연이 읽는 이들의 가슴을 저민다.
대전현충원은 최근 ‘하늘나라 우체통’을 개설했다. 묘비 앞에 놓인 편지가 빗물에 젖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대전현충원 측이 충청지방우정청의 협조를 얻어 설치한 것이다. 대전현충원은 지금까지 1000여통의 편지를 모아 ‘묘역 우편물 수집철’을 만들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는 이런저런 사연의 편지들이 일반에 공개된다. 국가기록원이 지난 5일 공개한 맹호부대 소속 파월장병 정영환 대위의 편지에는 아내를 향한 그리움이 물씬 묻어난다. “언제나 한결같은 당신의 아름다운 마음씨에 그리움이 복받치는 밤입니다….”
지난 4일 미국과 베트남은 43년 만에 전쟁 유물을 교환했다. 양국 국방장관은 1969년 3월 베트남 북부지역에서 전사한 스티브 플래어티 병장의 피 묻은 편지와 북베트남군 병사 부딘도안의 일기장을 주고받았다. 참혹한 전쟁을 치렀지만 이제는 우호관계로 변한 양국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남한과 북한이 미국과 베트남을 본받는 날은 언제일까.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