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기선] 19대 국회의 성공조건
입력 2012-06-07 18:30
“충분한 토론을 거쳐 자유투표로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맞다”
19대 국회가 원 구성 샅바싸움으로 법정기일에 개원조차 하지 못했다. 시작부터 국회법을 위반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 의원들의 자격 시비, 종북 논란 등으로 정치권은 이미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원만한 국회운영을 저해할 요인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19대 국회의원의 이념성향과 정책태도’에 따르면, 여당과 야당 의원들 간의 사회이념과 외교·안보·반공이념 거리는 16대 국회 이후 가장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번 국회가 이념 대결로 흐를 경우 대립과 갈등이 매우 심각해질 수 있음을 예고한다.
또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상대 정당 후보에 대한 ‘아니면 말고’ 식의 흠집내기 정치공세가 한층 강화될 것이고, 그로 인해 국회가 언제라도 파행될 우려가 있다.
이번 국회에서 처음 적용되는 이른바 국회선진화법도 중요한 변수다. ‘격투기 국회’의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식물국회·불임국회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지난 국회에서와 같은 정치 행태가 지속된다면 그런 우려가 현실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런 제반 상황을 고려할 때, 정치권에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경우 이번 국회는 자칫 18대 국회를 넘어서는 최악의 국회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당내는 물론 정당 간, 당정 간 의사소통이 실질적이면서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과거 국회에서도 여야간 대화는 있었지만, 진정성 있는 협상이라기보다는 면피성 혹은 명분 쌓기용 협상은 아니었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번 국회에서는 의석 분포나 국회선진화법상 여야 간의 타협 없이는 입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질적인 정책협의가 가능하도록 여야와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정책협의체를 구성하고, 이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나 여당은 야당의 의견에 마음을 열고, 야당은 정부·여당에 대한 반대세력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고 함께 타협점을 찾는 대안세력이 돼야 할 것이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 일부 야당이 내세웠던 한·미 FTA 전면 폐기 주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인식되기에 충분했고, 결과적으로 여론의 역풍을 맞은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19대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2%가 ‘여야를 떠나 정부에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반대할 것은 반대하겠다’고 답했다. 말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주길 기대한다.
더불어 자유투표제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과거와 같이 당론투표만 고집한다면 19대 국회는 지루한 말싸움만 하다가 임기를 마치는 가장 비효율적인 국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충분한 토론을 거치되, 정당 간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종국적으로는 자유투표로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도 합당하다. 여야의 의원수가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당이든 굳이 자유투표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
독립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의 소신은 존중돼야 마땅하다. 과거 국회에서 벌어졌던 폭력과 날치기 등 파행의 주된 원인은 ‘당론’이라는 족쇄였다. 위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번 당선자들 중 당론과 개인 소신이 충돌할 때 ‘당론에 따르겠다’고 응답한 경우는 19.2%에 그친 데 비해 ‘개인의 소신에 따르겠다’는 응답은 46%였다. 정당 지도부는 국회선진화법을 제정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소속 의원들이 소신껏 정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
어느 제도든 운용하기 나름이다. 국회선진화법의 문제점을 우려하는 견해도 많지만, 정치권이 당리당략을 떠나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운용한다면 오히려 정치 선진화의 견인차가 될 수 있다. 정치권의 인식의 일대 변화와 국민의 비판적 감시가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정치권은 하루속히 국회를 정상화하고,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 민생 우선의 정치를 펼쳐야 할 것이다.
이기선 중앙선관위 전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