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정말 열심히 일하지 않은 탓일까… ‘노동의 배신’
입력 2012-06-07 18:33
노동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부키
최저임금을 받아서 과연 먹고 살수 있을까.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가난한 게 정말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일까.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이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매년 한 달 동안 3개 지역을 선택해 식당 웨이트리스, 가정집 청소부, 월마트 매장 직원 등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꾸려 나간다. 목표는 단순했다. 일을 구하고 그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음식을 사고 잠자리를 구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 그러나 그 단순한 목표를 이루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처음 맞닥뜨린 일은 식당 웨이트리스였다.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시간당 2.43달러에 팁을 더한 금액을 받기로 했다. 테이블 스물일곱 개 가운데 에런라이크에게 할당된 건 여섯 개였다. 그는 끊임없이 쓸고, 닦고, 썰고, 붓고, 채우는 식당 노동자들이 늘 남들을 먹이느라 치이기 때문에 그토록 흡연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흡연자들이 이런 반항적인 자기 양육 심리 때문에 흡연 행위에 그렇게 집착하고 있다는 걸 금연 운동가들은 왜 모를까? 미국의 일터에서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몸속에 키우는 종양과 그것을 키우는 데 바치는 몇 분뿐인 듯했다.”(52쪽)
주머니엔 어느 정도의 팁이 들어 있었으나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다. 관광객들의 수가 줄어들자 팁으로 20달러밖에 챙기지 못한 날들이 늘었다. 저임금 체험을 위해 멀쩡한 집을 놔두고 구한 원룸의 월세는 500달러였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월세에서 100달러는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지출을 줄일 곳도 없었다.
두 번째는 청소 용역 회사의 파견 청소부였다. 거대한 진공청소기를 등에 진 채 집안 곳곳을 청소하고 무릎을 꿇어 바닥을 닦고 똥 묻은 변기와 욕조의 체모까지 치워야 했다. 가려움증 때문에 나병 환자 같은 몰골이 된 그에게 사장은 ‘아무 문제없다’며 일하러 가라고 떠민다. 동료들은 값싼 진통제나 담배, 술 한 잔에 의존하거나 대부분은 그냥 참는 것으로 버티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체험한 월마트 매장 일은 ‘단순노동’이다. 숙녀복 매장에 배치된 그는 손님들이 어질러 놓고 간 옷을 정리하고 제자리에 갖다 놓는 뒤치다꺼리를 했다. “오후 6시나 7시쯤 되니 앉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면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고객들의 부주의와 쓸데없는 변덕 때문에 내가 허리를 굽히고 쪼그려 앉고 뛰어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하기 힘들었다.”(225쪽)
처음 저임금 체험에 뛰어들었을 때, 그는 복지 개혁론자들이 주장하듯 최저임금을 받는 일자리로 생계를 꾸려 갈 수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겐 ‘특별한 절약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었다. 그는 오히려 가난하기에 돈이 더 드는 상황에 수시로 맞닥뜨렸을 뿐이다. 그가 저임금 체험을 할 당시, 미국은 성장이 지속되면서 물가는 안정된 이른바 ‘골디락스 경제’에 한껏 취해 있었다. 전례 없는 호황이라던 그때, 노동인구의 30%가 시간당 8달러 이하의 임금을 받았고(1998년), 최저임금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10년간 시간당 5.15달러에 멈춰 있었다.
하지만 2001년 5월 이 책이 출간돼 워킹 푸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자 29개 주가 최저임금을 인상했고 100개 이상 도시에서 생활 임금을 지급하라는 법령이 통과됐다. 마침내 2007년 7월에는 연방정부가 최저임금을 인상하기에 이른다. 현재 미국 연방정부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