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영 장로 칼럼] 종교인과 신앙인 (4)

입력 2012-06-07 15:56

한 여인의 기도가 일구어낸 것

나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다.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때쯤으로 기억된다. 우리 어머니는 정말 지독한 예수쟁이셨다. 매일 기도와 성경책 보는 일 외에는 하는 일이 거의 없으셨다. 왜냐하면 그 당시 폐병이라는 몹쓸 병에 걸리셨기 때문이었다.



집안의 경제사정은 넉넉했지만 절대로 약에 의존하지 않으시고 기도로만 치료하시겠다고 고집하셨고, 그런 어머니의 고집을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철저한 불교신자인 외할머니는 딸이 측은하여 좋다는 약은 모두 가져다가 딸에게 주었으나 그 약들은 모두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렸을 때 이런 어머니를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고 제발 약을 드시고 원기를 회복하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기도와 찬송이 전부였다. 그리고 기도 내용은 “불교 집안인 친정집 식구와 남편이 예수님을 믿게 해달라.”는 기도뿐이었다. 어린 마음에 참으로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건강이 많이 좋아지면 가끔씩 나를 데리고 기도원으로 가서 기도하셨다.

우리 아버지는 몇십 년 동안 그런 어머니를 군말 한마디 없이 뒷바라지하며 사셨다. 참으로 대단한 분이셨다. 가끔은 화도 내셨지만 그래도 그런 부인을 사랑하고 잘 대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봐도 나는 도저히 그런 너그러움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

어머니는 건강이 좀 좋아지시면 봄, 가을에 수십 명의 교인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가정부흥회를 열었고, 모든 경비는 아버지가 아무 불평 없이 후원해 주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가끔 어머니께 금반지, 목걸이 등 패물을 선물하셨는데 몇 달이 지나면 패물은 하나 둘 없어졌다. 부흥집회가 끝나면 금반지는 헌금이 되고 패물은 숭인동 판자촌의 쌀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가 패물을 해주시면 그것은 어느 새 연탄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어머니는 결국 병마와 십여 년 동안의 싸움 끝에 돌아가셨다. 나는 그때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 때 그렇게 염원했던 어머니의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완고했던 외갓집 전 식구가 기독교로 개종했고, 지금은 외갓집 자손 어느 누구도 신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 그리고 우리 집안도 모두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리고 새어머니의 친정집 형제들도 모두 기독교인들이다.

무의미하게 보이던 한 여인의 기도는 그 당시 쓸모없어 보였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 위대한 기도의 힘을 알게 되었다. 물질의 축복과 함께 건강과 하나님의 축복이 몇 대까지 간다고 하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서 몇백 배, 몇천 배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나는 나의 가족사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간구하는 자에게 자손만대까지 축복하여 주시는 것을 나는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강덕영 장로/ 한국유나이트문화재단 이사장, 갈렙바이블아카데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