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이 가꾸던 채마밭엔 아직 그 숨결이… 양평 두물머리로 떠나는 추억여행

입력 2012-06-06 18:51


조선시대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자찬묘지명에서 ‘이 무덤은 열수 정약용의 묘이다’고 했다. 열수(洌水)는 한강의 옛 이름으로 한강변인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태어난 다산은 한강을 무척이나 사랑해 자신의 호로 ‘열수’를 자주 사용했다. 다산은 죽어서도 열수가 내려다보이는 능내리 언덕에 잠들었다.

금강산에서 휴전선을 넘어온 북한강과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해 골지천, 조양강, 동강 등 다양한 이름으로 흘러오던 남한강은 양평군 양수리의 두물머리에서 극적인 상봉을 한다. 두물머리는 북한강의 자갈과 모래 등이 퇴적해 생긴 하중도(河中島)로 수도권 사람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 한양의 뚝섬나루와 마포나루를 이어주던 마지막 나루터로 번창했지만 1973년 팔당댐이 완공되고 일대가 그린벨트로 지정되면서 나루터 기능이 사라졌다.

두물머리 여행의 출발점은 전철로 접근이 가능한 양평의 양수역. 역 앞에서 3시간 동안 무료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형형색색의 연꽃과 수련이 피기 시작한 세미원. 경기도에서 조성한 세미원은 수생식물 테마공원으로 ‘물을 보면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면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라는 뜻. 팔당상수원의 수질정화를 위해 연꽃, 수련, 창포, 부들 등 60여 종의 수생식물을 식재했다. 개울 한가운데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면 연꽃 연못 사이로 난 흙길 산책로가 미로처럼 이어져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

두물머리는 북한강 줄기인 개미기 도랑을 사이에 두고 세미원 건너편에 위치한다. 강변을 따라 1㎞ 길이의 흙길 산책로를 쉬엄쉬엄 걷거나 자전거로 달리다 보면 하중도 맨 아랫부분에 위치한 말죽거리에서 수령 400년의 느티나무를 만난다. 두물머리의 터줏대감인 느티나무는 높이 30m, 둘레 8m. 나룻배를 타고 한양을 오가던 길손들이 잠시 들러 국밥으로 허기를 달래던 곳이다.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 나룻배 대신 자동차를 타고 두물머리를 찾는 시대가 됐지만 강 건너 산들이 중중첩첩 농담을 달리하는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공을 뛰어넘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양평의 양수역에서 남한강자전거길을 타고 북한강철교를 건너면 다산유적지가 위치한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중앙선 기차가 다니던 폐철도를 신나게 달리면 이내 추억의 간이역인 능내역을 만나게 된다. 먼 기적소리와 함께 기차가 떠나버린 능내역은 한동안 고독의 대명사로 남았었다.

홀로된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능내역이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남한강자전거길이 개통되면서부터. 녹슨 기찻길에는 기차카페가 들어서고 역 앞에는 자전거대여소와 진홍색 인증센터도 설치됐다. 자전거 여행객들로 북적이면서 지역상권이 다시 살아나고 능내역은 기차가 다닐 때보다 더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다산유적지는 두물머리가 지척인 능내역 앞 마을에 위치한다. 다산은 조선을 대표하는 실학자로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유사화에 연루돼 전남 강진 다산초당에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의 책을 저술한 인물. 다산 생가가 있던 다산유적지에는 복원한 생가 ‘여유당’과 소나무가 병풍처럼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부부 합장묘를 비롯해 기념관, 사당, 실학박물관 등이 들어서 있다.

‘서둘러 고향마을 도착해보니/ 문 앞에는 봄 강물이 흐르는구나/ 기쁜 듯 약초밭둑에 서고 보니/ 예전처럼 고깃배가 보이누나/ 꽃이 만발한 숲 사이 초당은 고요하고/ 소나무 가지 드리운 들길이 그윽하네/ 남쪽 천리 밖에서 노닐었지만/ 어디 간들 이 좋은 언덕 얻을 거냐’

다산은 귀양지인 강진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기쁨을 ‘환초천거(還苕川居)’라는 시로 남겼다. 그가 기쁜 듯 서있던 약초밭은 한강변 실학생태동산의 다산채마원으로 거듭났다. “시골에 살면서 과수원이나 채마밭을 가꾸지 않으면 세상에서 버림받는 일이 될 것이다”고 강조한 다산의 실학정신을 구현한 채마원에는 보리, 수수, 토란, 앵두, 작약, 목화, 모시풀, 뽕나무 등 먹거리 작물과 입을 거리 작물이 심어져 있다.

실학생태동산은 강 건너 하남의 용마산 등이 한눈에 들어오는 소내나루 전망대를 비롯해 데크, 억새길, 산책로, 숲, 연못, 꽃밭 등이 정갈하면서도 소담스럽게 가꿔져 있어 한두 시간 다산의 실학정신을 음미하면서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다. 두물머리 일대를 한눈에 조망하려면 운길산 중턱에 위치한 수종사를 올라야 한다. 수종사 입구까지 자동차가 달릴 수 있다.

양평·남양주=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